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으면 가끔 짜증스러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왜 베토벤은 자연 속을 거닐면서 저런 궁상스러운 악상을 떠올려야만 했을까? 자연이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지 베토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텐데. 베토벤의 자연은 늘 아름답고 평화스럽기만 하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본질… 즉 ABC 를 다시 배우라는 것만 같다.
고금의 명곡이 지향하는바는 늘 어딘지 어른스럽고 모범답안이기만하다. 자연을 배우라… 이러한 요구는 (루소의)‘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과는 또다른 차원일 것이다. 본래로의 회귀, 즉 선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것이기보다는 강압적으로 배우라는 것만 같다. 악하고 패역한 세대여 자연에서 배우라!
장엄한 교향곡은 이처럼 우리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 같다. 왜 고루하게 베토벤은 우리를 가르치려만 드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도 삶에 문제가 닥칠 때, 즉 뜻하지 않은 변고로 심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배신의 상처… 혹은 모진 아픔을 겪을 때, 베토벤의 음악은 신비하게도 무한한 용기를 가져다 준다.
인간이란 순풍에 돛달고 평화로운 항해를 할 때에는 결코 행복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존재이다. 폭풍우 속에서만이, 도전만이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지, 자연 속에서 배우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는 진정한 스승이기도 하다.
전원 교향곡… 아니 전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향수는 무한하다. 그것은 인간이란 결코 전원(자연)이라는 탯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가 때문이다. 전원 교향곡을 들으면 늘 떠오르는 정경이 있다. 아마도 베토벤 역시 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그러했겠지만,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때를 회상하는 마음, 자연 속에서 착한 교향곡에 대한 완성… 그 투박하고 우직스러운 열망은 음악으로 또다시 재현되는, 무한한 힘이자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
나의 전원은 (여기서 전원은 표면적인 자연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고, 마음으로 바라보는 전원과의 만남을 얘기하고있다) 만 15세가 됐을 때 비로소 펼쳐지기 시작했다. 육체의 변고로 잠시 휴학을 하면서 여름을 맞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 가족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약을 위한 휴식기라고나할까, 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뭣한 곳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 오래전 철거민들에 의해 생겨난 판자촌같은 곳이었는데 5백미터 전방에 뚝이 보였고, 주위에 배추밭 참외밭이 널려있는 공터 한 가운데 1백여 가구가 다닥다닥 게딱지처럼 붙어 살고 있었다. 빈한했던 환경과는 달리 아이들은 순수했고 공터에서 볼을 차거나 참외밭 오두막에서 장기 등을 두며 여름을 나곤했었다. 시원한 매미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에는 오두막의 운치는 자못 평화스럽기도 하고 시골분위기조차 나는 것이었다.
오두막쪽에서 넓은 밭 두 개쯤 건너에 마을 교회가 서 있었고 토요일이 되면 그리워지는 예쁜 소녀가 찾아오곤 했었다. 첫사랑이라고해야 할 그 소녀에 대한 감정은 그러나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었을 뿐 이성에 대한 색다른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밤하늘의 별처럼, 오두막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물론 자연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 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거나 신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눈에 비쳐지는 것 보다 훨씬 거칠고 악하며 혹독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마음이었다. 세상엔 순수하고 진실한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그 어떤 감동이란 없다.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따분하면 따분한대로 기교나 과장으로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베토벤의 투박하고 선한… 자연의 소리는 무한한 감동을 준다. 삶이 우리를 속일때, 스스로 양심의 선을 넘어 혼탁함에 빠져있을 때, 자연은 무한한 힘으로 위로와 도전을 안긴다.
‘나 보다 더 자연을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베토벤은 늘 자연에서 배우고, 도덕과 진실을 예술의 핵심가치로 삼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노래했던 교향곡이야말로 어쩌면 베토벤을 위해 탄생한 형식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6번 전원과 5번 운명은 1808년 빈에서 동시에 발표 되었는데 베토벤의 가장 위대한 두 교향곡이 같은 날 세상에 동시에 태어난 것도 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이정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