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상하원의 헬스케어 법안을 통틀어 ‘트럼프케어’로 부르긴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마음은 분명치 않다. 오바마케어를 폐지시키고 공화당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는 해왔으나 뜨거운 논쟁과 거센 반대를 몰고 트럼프케어의 주요내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잘 몰라서였을까, 별로 한 적이 없다.
지난 5월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향후 10년간 무보험자를 2,300만 명이나 더 늘릴 것으로 경고된 하원안 승리파티를 열어놓고는 사석에선 하원안을 ‘mean’이라고 언급해 공화당 의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인색하다’ ‘비열하다’부터 ‘냉혹하다’까지의 의미 중 무엇을 뜻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원안엔 “관대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기를 바란다고 그는 덧붙였었다.
그러나 지난주 공개된 상원안은 인색하고 냉혹한 측면에서 하원안과 대동소이하다. 메디케이드의 엄청난 삭감으로 가난하고 병든 서민들의 혜택은 대폭 줄어들고, 상당한 감세혜택은 부유층과 보험회사들에게 주는 골격은 트럼프의 대선공약과도 정면충돌한다.
캠페인 내내 트럼프는 거듭 약속했었다 - “모든 사람이 보험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 “보험료와 디덕터블을 낮추겠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삭감하지 않겠다” “중산층의 감세를 추진하겠다”…하원안도 그렇지만 상원안 역시 이 같은 트럼프 공약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주 초 발표된 의회예산국(CBO)의 상원안 분석평가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무보험자가 지금보다 2,200만 명이 더 늘어나고, 보험료와 디덕터블이 올라가 “저소득층은 거의 어떤 보험도 사기 힘들어지며”, 메디케이드는 향후 10년간 7,720억 달러가 삭감된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재정의 대부분은 중산층과 빈곤층이 아닌 부유층과 보험회사의 감세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바마나 클린턴 전 대통령들처럼 법안 내용을 꿰뚫고 있었더라면 아무리 트럼프라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헬스케어 개혁안은 단순히 오바마케어 폐지와 대체에 그치는 게 아니다. 민주당과 정치적 대립을 빚으며 지난 수십년 추진해온 공화당의 정통 어젠다 두 가지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헬스케어안 통과로 ‘경제를 활성화 시킬 부유층 감세와 웰페어 국가에서 벗어나 작은 정부로 가는 복지예산 감축’이라는 최우선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사사건건 오바마 발목잡기에 성공하며 입법 전략가로 이름 난 미치 매코넬 상원 공화당 대표에겐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던 드문 기회였겠지만 이번엔 그의 치밀한 전략이 정치 현실에 발목을 잡혔다.
민주당 지지는 진즉부터 포기한 그를 막아선 것은 공화당 내 반대다. 그는 이번 주 강행하려던 상원 본회의 표결을 부득이 독립기념일 연휴 이후로 연기했고 트럼프케어의 운명은 다시 벼랑가로 몰리게 되었다.
상원안이 통과되려면 52명 공화당 의원 중 최소 50명은 찬성해야 한다. 그래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행사할 1표를 합해 51표 과반수로 통과된다. 민주당은 전원 반대가 확실하니 공화의원 3명만 반대하면 상원안은 무산된다. 그런데 현재 반대하는 공화의원이 무려 9명이다.
법안 내용을 다소 수정해 이들을 설득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이들의 반대이유가, 서로 다른 정도를 넘어 정반대라는데 있다. 티파티 극우파들은 삭감 규모도 부족하고 규제 해제도 충분치 않은 ‘무늬만 오바마케어 폐지’라면서 더욱 ‘mean‘한 법안을 원하고, 오바마케어 수혜자들이 많은 주 출신의 중도파 의원들은 메디케이드 삭감이 지나치다고 우려한다. 반대쪽을 향해 서서 대립하는 이들의 차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설득할 것인가에 상원안의 성패와 함께 매코넬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서게 되었다.
민주당과 손잡는 ‘초당적 타협설’도 일각에서 제기되긴 하지만 상원안은 아직 죽지 않았다. 통과 전망도 낮은 편이 아니다. 연기한 후 시간을 벌어 반대를 극복한 하원의 전례도 있다. 극우파와 중도파의 반대로 3월말 표결을 포기한 채 유보되었던 하원안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5월초 통과되었다.
앞으로 열흘, 상원안을 둘러싼 ‘투쟁’은 장 내외에서 뜨겁게 전개될 것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번 주 중에 수정안을 마련하고 다음주 CBO의 평가를 받은 후 반대의원들을 어르고 달래는 설득에 들어간다. 전국에선 반대시위가 격렬해지고, 유권자들은 각 선거구의 타운홀 미팅에서 찬반의 보이스를 높일 것이며, 이익단체들은 상원의원들의 자기 쪽 표 확보를 위해 치열한 로비를 펼칠 것이다.
날씨와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이번 연휴에 공화당 의원들에게 서늘한 ‘자성의 시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물론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오바마케어 폐지는 지난 7년 모든 공화당 의원들에게 지상 최대의 과제였으니까. 그러나 수천만명의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을 장본인이 되고 싶지 않은 것도 또 한편의 진심일 것이다. 게다가 상원안의 인기는 바닥이다. 지지도가 어제 나온 USA투데이의 여론조사에선 12%, PBS 조사에선 17%에 머물렀다.
이런 갈등 속에서 당익보다 국익이, 보수주의 철학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중요하다고 결론짓는 ‘양심’이 최소한 3명에겐 아직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다. 양심이 아니라 내년 선거 표밭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정치적 계산이라도 상관은 없을 듯하다.
<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랜드 폴 의원은 확실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입니다.
우자지간에 오바마케어는 폐지돼야한다.
결국은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게 정치인입니다. 공화당이 원하는것을 할것인가? 지역구 주민들의 마음을 따를것인가? 이것에 대한 국민들의 대답은 선거입니다. 선거로 대답해줄테니 잘 결정하기를 바랄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