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혀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버둥대다 보면 서로 싸우기 마련이다. 싸움 없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한 번의 싸움이 없다면 이는 정상적인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닐 것이다. 좋은 싸움이 어디 있을까마는 싸움 뒤에 무언가 얻을 수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제임스 딘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주인공 역으로 당시 사춘기 남녀의 우상이 되었다. 영화 속의 제임스처럼 감정조절이 힘들고, 행동은 충동적, 반항적인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고생은 심하다. 사춘기 자녀들은 스마트 폰을 자나 깨나 들고 다니며 게임에 열중하고, 또래끼리는 지나치게 잘 어울리면서 부모와는 말조차 섞지 않는다. 부모가 말이라도 붙여 보려고 하면 짜증부터 낸다.
“얘야, 학교가기 전에 뭣 좀 먹고 가라.” 엄마의 말에 딸은 ”괜찮아, 배 안고파.” 딸은 근래 체중에 아주 예민해졌다. “머리가 왜 이래, 머리 좀 얌전히 하고 다녀라”는 말에 딸은 마지못해 빗질을 하는 척한다. 만나는 남학생이 별로 좋은 아이 같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엄마의 말에 “또 그 소리, 엄마 이제 그만 좀 해, 나 다 컸어.” 딸은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쾅 닫고 나간다. 아침 등교 시 틴에이저 딸 있는 가정에서 자주 있는 대화 내용이다.
왜 엄마와 틴에이저 딸은 자주 싸울까? 겉보기에는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인 듯하다. 즉, 엄마는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 충고를 하지만 딸은 잔소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속을 살펴보면 좀 복잡하다. 엄마는 자신이 틴에이저였을 때 부모에게 했던 거친 언행, 남학생과의 부적절했던 행동 등이 딸을 통해 다시 회상되어 불안과 죄의식을 느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사랑으로 포장된 간섭과 과잉보호의 심리적 기전이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또 다른 추측은 딸의 발랄한 젊음에 갱년기 엄마는 시기와 선망의 경쟁의식을 느껴 싸움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한편 딸은 엄마를 사랑하지만 숨 막히는 보호와 감시에 질식할 지경이며 자신을 엄마의 소유물로 여기는 데 대한 분노에 차있다. 더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결핍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 혹시 예기치 않는 행동이 나타날까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사춘기에는 대뇌의 전 전두엽의 성숙 속도가 신체성장 속도를 따르지 못해 공격적, 충동적, 비이성적 행동패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과 이해 그리고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틴에이저가 되어 가는 자식과 싸울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게 좋다. 자식이 말을 안 들어도 화내고 고함치는 대신 틴에이저가 경험하는 급격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음엔 아이의 말에 관심을 갖고 귀담아 듣는 훈련이 중요하다. 마지막에는 부모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다. 가장 나쁜 싸움은 싸움 후에 자식이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더 심하고 오래 가기 마련이다. 틴에이저는 감정이 예민하여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좋은 부모가 되고 좋은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 가정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가정은 아이들의 육체적, 정서적 성장과 성숙에 젖과 꿀이 넘치는 기름진 들판의 역할을 한다. 삶의 허무함, 존재감과 정체성 혼란으로 우울해진 엄마, 그리고 삶의 책임감을 훌훌 털어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싶은 중년기 위기의 아빠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가정 내의 소통도 중요하다. 아이에게 무슨 충고를 할 때도 강요가 아닌 부탁형식의 소통이 훨씬 효과적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느 누구도 완전히 맞을 수는 없다. 서로 조금 주고받고 하는 변증법적 타협이 엄마와 틴에이저 사이를 원만하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겠다. 틴에이저 자식을 어느 정도의 성인으로 인정하고 크지 않은 일을 결정하는데 가끔 선택권을 주도록 하자. 틴에이저 자녀가 어떻게 될까 염려스러워 헬리콥터처럼 주위를 빙빙 돌며 과잉보호를 하는 엄마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다. 좋은 싸움으로 틴에이저 자식이 학교나 사회에서 리더십을 가진 성인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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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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