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을 지겹도록 붙어살던 오빠는 결혼을 하고, 나 역시 성인이 되어 공간적인 독립을 한 지 수년이 흘렀다. 서로 가까이 살면서도 경조사 외에는 가끔씩만 만나보며 지내는 삶에 훨씬 익숙해졌을 무렵, 오빠가 타주로 이사를 갔다. 결국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처럼, 떼려야 뗄 수 없어 보이는 가족의 관계도 언젠가는 어떻게든 헤어지기 마련이다.
분명히 놓칠 수 없는 발전의 기회를 잡기 위해 멀리 떠나는 오빠의 쉽지 않았을 선택을 진심으로 응원하면서도, 미국 땅에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가 자동차를 운전해서 만나러 갈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난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야속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항상 더 큰 성공, 행복, 자유, 마음의 안정, 혹은 새로운 변화를 위해 정신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때로는 최선의 미래를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감행해야 한다. 항상 옳은 선택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만 살다가는 우리 삶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공부를 하라며 어머니가 방문을 닫고 나가시면, 나는 전과 밑에 몰래 깔아놓은 연습장에 온갖 낙서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상상의 세계를 펼쳤다. 탈선을 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학교 수업을 빠져도 미술시간은 꼬박꼬박 출석했었다.
결국 내 미래를 위해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주위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전문직을 택한 나는 성취감보다는 괴리감에 빠져 너무 일찍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저 내게 돈을 주는 특정 개인이나 업체의 이익만을 챙기는 증거를 수집하는 직종을 벗어나, 이 세상 그 누가 보기에도 옳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이상주의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빚지며 얻어낸 전문직 타이틀을 묵혀두고 그냥 내 소신껏 살아보겠노라 하는 나의 무모한 듯한 선언에 경악을 하시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보며, 장성한 자식이 되어 아직도 그들을 내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과연 모두가 똑같이 만족하는 선택이 있기는 할까?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불이익이 되기 십상인 이 세상에서는 누군가의 기쁨이 또 다른 이의 상처가 되고는 한다. 자고로 수험생 한명이 더 붙으려면 다른 한명이 떨어져야 하고, 돈이 한군데로 모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손실이 있어야 하며, 누군가의 특별사면은 그 처사를 불평등하게 느끼는 또 다른 누군가의 원성을 낳으며, 모든 경쟁에서는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
하물며 거짓인생을 사는데 지쳐 용기 내어 솔직하게 커밍아웃을 해도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편견과 비판이라는 값을 치러야 하는 게 이 사회 아니던가.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의 선택이 범법이나 불법이 아님에도, 그저 그것을 문제 삼는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시 되며 가혹해졌다.
특히 공인은 “좋은 사람”으로 살기가 더 힘들다. 한 순간의 상황에 부적절한 인상만 사진에 찍혀도, 무심코 말을 내뱉어도, 뭣 모르던 시절에 실수를 했어도, 남들이 매일 하는 실수를 해도, 지극히 단면만을 겪어 볼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며 피해의식에 젖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대선이 끝나면 여야의 쌍방 깎아내리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정권 쟁탈전도, 서로 흠집 내기도 끝이 없다. 국회에서는 검증 공세를 빙자한 청렴결백한 후보가리기 식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보이는 결격사유는 물론이요 보이지도 않던 먼 옛날의 행적들까지 탈탈 털리는 후보들을 보면서, 과거지사를 저렇게 후벼 파면 먼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트집 잡힐만한 모든 것들을 트집 잡는 상황에서, 미래에 깨끗하게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각오와 가능성이 있는 인재들마저 매장당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손실일까? 과유불급이다.
우리가 이 ‘탈진실’의 시대에서 감정에만 치우쳐 너무 큰 에너지를 소모하며 실속을 찾는 법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으로 믿는 데만 익숙한 우리에게 진실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선의를 지니고 있어도 행동의 결과가 항상 그와 일치하기에 힘든 세상 아니던가.
<
이지연/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국회가 왜 필요하지.... 촛불과 어리송이 판사면 다 끝나는데...
폭도들의 나라인데 이정도면 양반이다.... 촛불들고 국회앞에서 에워싸고 밤세우면서 축제하는 꼴보면 할말있냐... 이 ㅂ ㅅ 덜아...
먼지 없는 사람만 돌을 던지기를 ... 아니면 다같이 함께 까던지
탈탈 털고 남탓하는게 유일한 그들의 한국서 생존의 방식입니다. 이거 잘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고 공명정대하고 제대로 정치하려는 사람은 그냥 껍질채 벗겨저서 쫓겨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