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를 자주 감는 편이다. 땀이 많이 나는 여름철엔 거의 매일 감는다. 샴푸의 독성 탓에(사실은 노화현상이지만) 매번 머리카락이 술술 빠진다. 옛날 우리 조상 여인들은 단오 날(음력 5월 5일) 샴푸 아닌 창포풀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았다. 초여름의 이 세시풍속을 이행하면 머리카락이 오래오래 부드럽고 윤기 나고 옹골지며 숱도 많아진다고 했다
우리 조상 여인들은 머리를 1년에 한번 감았지만 중세기의 서양인 조상 여인들은 목욕을 1년에 딱 한번 했다. 그 시기가 단오와 비슷한 무렵인 5월말~6월초였다고 했다. 일년내내 냄새 났던 여인들의 몸이 깨끗해진 6월에 자연스럽게 결혼 러시가 일어났다. 신부들은 냄새를 완전무결하게 감추려고 꽃다발을 손에 들었다. 6월엔 향기 짙은 꽃이 만발한다.
결혼식이 오늘날까지 6월에 많이 이뤄지는 연유를 설명하는 속설은 그밖에도 많다. 가장 유력한 게 로마신화다. 6월은 영어로 ‘June’이다. 지고신인 주피터의 아내이자 결혼?출산의 여신인 주노(Juno)에서 파생했단다. 주노의 행차에는 칠색꽃빛의 전령 아이리스(무지개)가 항상 수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6월에 결혼하면 평생 즐겁고 행복하게 산다고 믿었다.
최악의 결혼 달로 꼽혔던 5월을 넘긴 데서 6월 결혼러시가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로마시절엔 고인을 기리는 ‘망자의 사육제’와 정절을 강조하는 ‘순결의 여신 축제’가 모두 5월에 끼어 있었다. 이들 축제기간에 결혼한 신부들이 허니문 동안 상복을 입고 울거나 첫날밤에 순결을 내세우며 잠자리를 거부해 남자들이 5월 결혼을 한사코 기피했다는 애기다.
신부의 임신이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꿍꿍이라는 주장도 있다. 6월 신부가 곧바로 임신해도 그해 여름철 농사일엔 지장이 없고, 이듬해 봄 출산 후 한두 달 쉰 뒤 다시 농사일에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요즘도 머리회전이 빠른 젊은이들은 징세연도가 바뀌기 직전 달인 6월에 서둘러 결혼한다. 부부의 연방 소득세율이 독신보다 낮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비 신랑신부들이 꼭 6월 결혼을 고집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뻔질나게 샤워하기 때문에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멋진 예식장이 연중 비어 있고, 꽃도 사시사철 핀다. 급하면 라스베이거스에서 10분 안에 결혼식을 끝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결혼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반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세태다.
한국에선 지난 2015년 30만 2,800쌍이 결혼했다. 전년보다 1% 줄었고, 2003년의 30만 2,500쌍 이후 가장 적다. 조혼인율은 5.9로 더 심각하다. 인구 1,000명당 5.9명이 결혼했다는 뜻이다. 통계가 1970년 작성되기 시작한 후 가장 낮았다. 평균 결혼연령은 남자 32.6세, 여자 30세로 1년간 0.2세 늦춰졌다. 늙다리 신랑신부가 점점 늘어난다는 의미다.
미국엔 배우자(spouse) 아닌 동거자(partner)와 사는 커플이 늘어난다. 동거커플도 결혼부부와 똑같은 권리를 인정받는 추세다. 한국의 한 여론조사에선 전체 응답자의 46%가 결혼 않고 동거할 수 있다고 했다. 청소년 중 61.7%는 결혼 전에 동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세태 속에 서울 ‘강남 웨딩메카’의 394개 예식장 중 69개소(32%)가 문을 닫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결혼 비용도 젊은이들을 혼전동거로 내모는 요인이다. 한국에선 지난해 신혼부부가 평균 2억7,000여만원을 결혼비용으로 썼다. 전년보다 거의 4,000만원이 늘어났다. 미국에선 집계기관마다 다르지만 대략 2만8,000달러였다. 지역별로 차이가 커서 알래스카에선 1만5,504달러로 때운 반면 뉴욕 맨해튼에선 물경 7만6,687달러가 들었다.
올해 단오(6월28일) 무렵 친지 아들이 결혼한다. 청첩장은 신랑신부가 친구들에게만 돌렸단다. 어쨌든 가상하다. 결혼포기 세태 속에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기로 서약하는 젊은이들 모습은 흐뭇하다. 나도 이미 파뿌리 된 머리를 올해 단오 날 창포물로 감아 덜 빠지고 냄새도 덜 나게 하고 싶지만 도대체 창포뿌리를 구할 수 없으니 헛일이다.
<
윤여춘/시애틀지사 고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