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죽음에 대한 철학(哲學)이 있을까. 아니 죽음의 철학(philosophy of death)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죽음의 철학이란 철학을 낳게 하고, 철학자를 잉태하게 하는 총 주제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철학자가 되기에 그렇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을, 인간을 다시 돌이켜 보게 하는 성찰을 요구받는다.
철학이란 말에는 지혜를 사랑함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그러니 죽음의 철학이란 죽음에 대한 지혜를 사랑함이라 풀이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죽음이 내 곁에 바짝 붙어 다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눈치뿐만이 아니라 죽음이란 어디 저 먼 곳에 있는 지푸라기처럼 생각하며 산다. 이것이 죽음이 가진 매력일 게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시인 김소엽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의 전문이다.
죽음이란 살아 숨 쉬고 있는 자들, 즉 남은 자들에게는 끝없는 물음표가 된다. 물음표. 그것이 곧 죽음에 대한 철학의 시초가 된다.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데모크리투스는 죽음과 삶을 원자들의 해체와 결합으로 보았다. 장자의 죽음 철학과 비슷하다. 장자는 몸에 들어온 기(氣)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보았다.
기는 우주의 에너지로 통한다. 즉 우주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의 시인이자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인 호메로스. 그리고 기원전 6세기경, 수학의 피타고라스 정리로 잘 알려진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영혼이 육체에 남아있지 않은 영혼의 부재(不在)를 죽음이라 인식했다.
이 같은 주장은, 사람은 죽어 육신은 땅에 들어가 썩어도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영혼불멸설에 근거를 둔다. 기독교와 불교, 유대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등은 영혼불멸설을 따른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영혼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다고 보았으나 고대 이집트의 사상은 다르다. 그들은 영혼을 카와 바로 본다.
카(ka)는 인간의 무의식이다. 바(ba)는 인격이나 자아를 의미하며 사람의 머리와 새의 몸통을 갖고 있다. 바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인 반면 카는 그대로 남는다. 사람이 죽으면 신(神)의 심장무게달기 재판을 통해 정당한 영혼이 인정되면 카와 바가 합쳐져 아크(Akh)가 되어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밑으로 내려가네/ 이승에서 못다한 이야기/ 못다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 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흙빛의 차디찬 침묵사이로/ 언뜻 스쳐가는 우리 모두의 죽음/ 노수녀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 가슴속에 하얀 구름으로 떠오르네”
이해인수녀의 시 ‘하관’ 부분이다. 시인 김소엽은 죽음을 영원한 쉼표(,)로 보았는데 이해인수녀는 죽음을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로 보았다. 둘 다 옳은 것 같다. 지난 6월2일 “김명신장로입니다”라고 다정히 전화 걸어오던 김장로가 별세했다. 이틀 후인 4일 암투병중이던 우병만목사가 또 세상을 떠났다.
김장로는 6.25참전용사로 종교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전화를 하고 사진을 전송해 주곤 했던 솔선수범의 장로였다. 우목사는 교계언론사 대표로 교회와 사회의 가교역할인 ‘사랑의 쌀나누기운동’등을 하며 불우한 이웃을 품어주던 언론인이었다. 51세에 별세한 우목사에겐 쉼표를, 98세에 별세한 김장로에겐 마침표를 주고 싶다.
주홍거미,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녹여 먹이며 죽어간다. 큰 가시고기,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끝까지 지켜주다 죽는다. 1999년 8월17일, 터키대지진. 무너져 내린 흙더미 속에서 아이를 부둥켜안고 죽어간 어머니, 아이는 살아났다. 이런 곳에 죽음의 철학이 있지를 않을까. 죽음이란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일 수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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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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