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트럼프 독트린, 혹은 최소한 구상단계의 독트린을 갖고 있다. 트럼프 독트린은 1945년 이래 양당 합의를 바탕으로 지속되어온 미국의 대외정책과는 완전히 다르다. 개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H.R. 맥매스터 국가안보수석보좌관은 월스트릿 저널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대단히 현실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그는 세계를 지구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조직, 그리고 기업들이 서로 뒤엉켜 이익을 다투는 경기장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개리와 맥매스터는 이어 “우리는 이같은 국제문제의 기본적 성격을 부인하기보다 오히려 적극 포용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말하는 포용은 미국의 파리기후협정 탈퇴로 가시화됐다. 파리협정에는 미국을 비롯한 194개 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했으나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193개 국으로 줄었다.
국제관계의 “기본적” 측면은 수 천 년 동안 면면이 이어져왔다. 인류의 근대사는 경쟁과 충돌의 역사다. 워싱턴의 외교정책 역시 이런 특징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미국은 세계최대의 군과 정보기관, 병력과 기지를 전 세계 수 십개 국에 주둔시키고 있으며 몇몇 대륙에서는 군사개입을 진행 중이다. 이 정도면 정치적 힘겨루기는 물론 군사적 경쟁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1945년을 기점으로 세계는 분명히 변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난 여파였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6,000여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들 두 대륙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이런 와중에서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 세우려 노력했다. 전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 국가 간의 이견을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국제기구를 만들고 규칙과 규범을 제정했다.
무역과 상업을 통해 세계 경제를 확대하고 모든 국가의 참여를 가능케 하는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또한 홀로코스트(대학살)로 연결된 비인간적인 정책에 대한 보다 강력한 도덕적, 법적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기본적인 인권을 강조했다.
미국의 노력이 완전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소련과 소련 동맹국들은 처음부터 이 같은 아이디어를 상당부분 거부했다.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의 주도로 구축한 시스템의 극히 일부만을 채택했다. 그러나 서구유럽, 캐나다와 미국은 사실상 평화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협력을 이룬 경이로운 지역이 됐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경쟁이 존재했지만 늘 성장과 자유, 인권개선을 목표로 삼아가며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소했다.
“서구”의 부상은 역사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기적이다. 국제적 경쟁이라는 “기본적인 성격”으로 인해 수 백년간 사분오열됐던 유럽은 더 나은 일자리와 성장을 일구기 위해 경쟁하거나 이웃국가들을 병합한다든지 복속시키려 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화의 구역’은 먼저 일본과 한국을 아우른데 이어 소수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까지 끌어들였다. 평화의 구역은 늘 전통적인 지정학적 방식으로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과 경쟁을 벌였고 충돌했다. 이어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했고 동구권의 많은 국가들이 개방된 국제질서를 향해 이동했다.
이 시스템의 중앙에 미국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려 했으나 실패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과거의 쓰린 경험을 되살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새로운 구상을 제시했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 미국의 대통령은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미합중국이 경쟁과 충돌을 기본으로 한 기존의 국제 질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무언가 독특한 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지난 25년간 미국은 멕시코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국제질서의 일부로 편입되기 원하는 수 천만 명이 새로운 시스템 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이 같은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보였고 개방된 국제질서가 일궈낸 성과에 무지했다. 그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도덕적 측면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을 무시했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시진핑, 압델 파타 엘-시씨와 로드리고 두테르테 등과 같은 스트롱맨을 찬양하는 발언을 일삼은 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유럽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을 폄하했다.
트럼프의 입장과 그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어쩌면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서서히 부식시킬 지도 모른다. 중상주의와 민족주의를 숭상하는 중국과 인도를 주축으로 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새로운 질서의 발흥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장기적으로 보면 유럽의 재부상을 통해 기존의 질서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푸틴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유럽대륙의 국가들을 결속시켰다. 바로 이 점을 강조라도 하듯 유럽 자강론을 내세운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같은 주에 인도 총리와 중국 총리를 연이어 맞아들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과 마주 앉아 과거 미국의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서구의 이익과 가치를 조목조목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서방세계의 종말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미국이 주도해 온 새로운 질서의 핵심적 역할을 끝장낼 수 있다.
<
파리드 자카리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I guess that is his strategies. You will see he comes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