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쉰일곱이다. 적지도 않고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 숫자는 절대적이지만 생각에 따라 젊고 늙음의 잣대를 달리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환갑을 목전에 두고 인생을 뒤돌아보며 정리할 시기라고 하겠지만 요즘 이런 생각을 하다가는 나이든 선배들에게 ‘개념없다’는 말을 듣기 딱 좋은 나이다.
주일 1부(오전8시) 예배를 마치면 어김없이 모이는 ‘비공인’ 설렁탕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막내다. 막내 ‘형님’과는 10년차. 최고령 ‘형님’보다는 거의 20년이 어리다. 여기 모이는 ‘형님’들은 다양한 직종에서 풀타임으로 활기차게 일한다. 누구도 은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건강하고 생각도 젊다. 그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미국 소셜시큐리티국에 따르면 오늘 65세가 된 남성은 평균 84.3세까지 산다. 여성은 남성보다 길어 86.6세다. 통계상으로만 본다면 절반은 이때까지 충분히 살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들 4명중 1명은 90까지 살 것이고 10명 중 1명은 백수에 가까운 95세까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돼있다. 앞으로 10년 후 내 나이 동무들은 오늘의 그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세계 보건기구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30년 한국 여성의 기대 수명치는 90세 이상으로 세계 35개 선진국에서 가장 높게 나와 있다. 가까운 미래의 일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의학, 좋은 음식과 쏟아져 나오는 의학 정보 등등, 인간의 수명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삶의 길이를 무엇으로 메울 것이냐다.
소셜시큐리티국 웹사이트(www.ssa.gov)의 기대 수명치 계산기를 이용해 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알아봤다. 현재의 나이 57세, 앞으로 25.6세는 더 살수 있다고 나온다. 83세까지 산다는 말이다. 물론 건강해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앞으로의 험난한 인생 고비를 넘고 넘어 무사히 70에 당도하면 기대수명치는 조금 더 높아져 86.2세까지 살수 있다고 돼 있다. ‘족집게 무당’도 아니고 정확이 어떤 계산법에 의해 이런 수치가 나오는지 들여다봤지만 너무 복잡해 설명하기 힘들다. 소셜시큐리티국에서 내게 지급해야 할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확한 계산으로 내놓은 나이이니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소셜시큐리티에 서명하던 1935년만 해도 남성의 수명은 61.9세, 여성은 65.3세 였다.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받는 나이를 65세로 정했지만 실제 수령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기대수명치가 그보다 20년 가까이 늘어났다. 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방정부 연금은 은퇴전 수입의 40% 수준이다. 나머지 부족분은 자신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25.6년은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시간이다. 결코 짧지 않다. 이 세월을 어떻게 해야 값지고 보람된 말년을 보낼 수 있을까.
우선은 건강해야 천명을 다하겠고 병원 침대에서 꼼짝없이 누워 지난날을 한탄하며 말년을 보낼 가능성도 줄일 수 있겠다. 그래서 달리기도, 자전거도, 때로는 마운틴 볼디도 열심히 오르내린다. 오래 살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다. 최소한 곤두박질치는 저질 체력을 끌어 올려 주변 괴롭히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 정도로 해두자.
두 번째, 정신적 피폐의 길로 가는 삭막한 말년을 피해야겠다. 너그럽게 용서 잘하고, 화도 내지 말고, 그래서 주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고, 민폐 끼치지 않는 멋진 삶을 이어가야겠다. 미시간 대학의 버릿 이거솔데이튼 사회학과 교수는 용서만 잘해도 우울증이 사라지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노년이다. 70 가까운 나이에 약사 자격증을 딴 한 마라톤 선배는 65세에 은퇴하고 90세를 넘긴 한 고교 선배가 컴퓨터를 배우러 다닌다는 말에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은퇴하고도 25년을 더 살았는데 내가 100세를 넘길지 누가 알겠나. 앞으로 10년인데 또 무료하게 시간만 때울 수 없지” 인생의 2막을 준비하라는 조언이다. 내앞에 펼쳐질 25.6년, 멋지게 낚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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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부국장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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