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도 말, 박완서 선생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로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한때 수필문학의 총아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덩달아 사서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아줌마 순전히 꾼이로구나….’ 제법 글께나 쓸 줄 아는, 냄새께나 맡을 줄 아는 아줌마다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한국의 내놔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룹엔 늘 박완서 선생이 끼어 있었다. 문장도 쌈박하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특유의 반어적인 글발이 왠지 먹힐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을 바라보는… 아니 그녀에게 보내는 갈채는 일종의 동류애(?)는 아니었다.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기 보다는 고루한 세대에게 보내는 나의 마지막 갈채였다고나할까.
우리세대의 꼴찌란 박완서 세대의 꼴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한동안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우리집이 순대국밥집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업이 기울자 어머니는 집팔아 과감하게 순대국밥집을 차렸다. 화량리 극장 근처였는데 그런대로 번화했고 근처 식당이 없어서 장사가 꽤 잘됐다.
형은 새벽에 시장을 봐 오고 나는 동생과 함께 학교갔다 오면 근처 여관 등으로 국밥을 나른다든지 디쉬 와시를 해야했다. 한번은 담임 선생이 가정방문을 왔는데 우리들 표현으로 X팔려 죽을뻔했다. 친구집으로 도망치기도 하고 가게가 싫어 극장 등에서 배회하다 들어가면 아버지가 문 앞에서 기다리다 싸대기를 올렸다.
학교에서는 든사람 난사람 된사람…을 가르쳤지만 씨도 안 먹힐 개뼉다귀같은 소리였다. 우리세대는 부모의 지위에 의해 어느정도 결정난다. 자신의 능력으로 따라 잡을 수 있다고요? … 그것도 어느정도 게임이 될 때의 이야기다. 우리 세대가 다소 반항적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부모 세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안다. 부모님들이 고생한 덕분에 이만큼이나 살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 몫도 어느 정도 남겨줘야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거다.
우리와 부모님과의 세대 갈등은 단순이 가치관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시대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 더 큰 차원의 압박감이었고 그것은 동시에 절대 부정될 수 없는… 어떤 절망내지는 자포자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공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고독에 의해 절망한 것이 아니고 고독하고 싶어도 고독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절망이었다고나할까.
어디를 가도 같은 사람… 같은 가치관이 추구되고 있는 시장판에선 숨 쉴 곳이라곤 없었다. 이런 우리 세대를 한편에서는 또라이들이 많다고 꼬집기도 한다. 고집(반항심)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것은 고집이라기 보다는 서러운 세파 속에서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자생적으로 싹튼, 고육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그것은 무대에 강제로 끌려나온 투우들에게는 얼마나 비참한 응원인가. 낙오이거나 또라이거나 앞이 뻔히 보이는 무의미한 경쟁을… 관망자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심리적 유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소위 베이붐 세대… 붕어빵 뻥튀기 세대가 두려워했던 것은 꼴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의 위치를 지켜야하는 압박감이 더 컸다.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론 카멜레온이 되어야했고, 필요에 따라선 꼬리를 자르고 도망갈 수 있는… 도마뱀의 생존법을 배워야했던 그 존재의 가벼움.
이제 한 세대를 치어만 살아왔던 우리세대가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나마 한비야같은 사람처럼 조직이고 나발이고 뛰쳐나가 세계를 휘젖고 다니며 자신의 일을 마음껏 펼쳐 온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욕지거리라도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 자체는 어쩐지 포근한 그림이다. 그도 아닌 박근혜같은 사람도 있다.
부모덕에 서열이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참으로 불쌍한 그런 무기력증이 낳은 시대적 비극도 있다. 한 세대가 갔다. 이제는 박완서 선생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상처의 시대도 지났다. 정상적으로 경쟁하지 못했고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때로는 향수처럼 그리웠던 꼴찌들의 질주… 그 스스로를 향한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를, 이제 마음껏 치며 남은 경주를 달려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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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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