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작품성있고 거기에 비애라고나할까,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소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루쉰(中, 1881-1936)의 아큐정전(阿Q正傳)은 단순히 하나의 소설일 뿐이지만 중국인이 쓴 현대소설이라는 점에서, 또 현대소설로서는 최초로 외국어로 번역되어 서구에도 큰 감동을 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세계문학의 한 맥을 이루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었다.
더욱이 이 소설은 문장이 매우 음률적인데 아마도 한자(漢字)라고 하는 포괄적인(뜻) 글자, 즉 漢詩의 영향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루쉰의 작품만큼 수식이 없으면서도 음악처럼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도 없다 할 것이다.
얼마전 youtube를 통해 아큐정전을 오디오 북으로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읽는 소설보다 듣는 소설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 아큐정전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루쉰은 1918년, 그의 나이 37세가 되어서야 ‘광인일기’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뷰했다.
지금부터 약 1백년 전의 일로서, 당시 중국은 신해혁명이라는 공화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사회적인 혼란이 극에 달한 때였다. 이때 루쉰은 의학공부를 중단하고 민중의 계몽을 위해 문예활동에 투신했는데 ‘아큐정전’등을 통해 중국이 (전근대적인)긴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야한다고 부르짖었다. 특히 마오저뚱 같은 이는 루신의 작품에 감동받아 루신을 혁명가의 모델로 삼았는데 사상적 영향력은 차치하고 수식이 배제된 직설화법이 주는 통쾌감은 예술적으로도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간결한 수식때문인지 장편소설은 남기지 못했지만 소설로 남긴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중편)아큐정전이었다. 중국 현대문학으로서는 최초로 서방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져, 이 작품을 읽고 프랑스의 로망롤랑, 러시아의 고리끼 등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인생은 가끔 얼어붙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사거리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생로병사, 운명… 욕망의 문제, 생활의 문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놀란 토끼처럼 자아를 숨길 (어두운) 구멍을 찾아 절망하는 인생들의 그 모순…. (그러나)인생이 비극적인 것은 어쩌면 늘 푸르기만을 바라고 늘 편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이기심때문인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오히려 비바람 속… 인생의 사거리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절망이 만들어주는 역설인지도 모른다.
내가 루쉰이라는 작가를 만난 것은 고생하던 시절 가게 다락방에서 읽었던 삼중당 문고를 통해서였다. 한국에서 가져 온 낡아빠진 책이었는데 이사를 다니면서 이리저리 없어지고 약 십수권 정도가 남아있었을까… 개집처럼 어둡고 음습한 다락방에서 우연히 빼든 루쉰의 작품은 무한한 비애와 인생에 대한 도전을 안겨 주었다.
‘아큐정전(阿Q正傳)’은 개화기 당시 신해 혁명을 배경으로 무지몽매한 최하층 농민 아큐라는 인물을 내세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에 취해 있는 아큐의 모습을 통해 시대적 위기 속에서도 대국의 자존심만을 지키고 있던 시대착오적인 중국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루쉰의 사상과 아큐정전에 대한 평론은 몇줄로 쓰기엔 부족함이 많고, 또 시대적으로도 루쉰은 사회주의 작가여서 작품성과 사상이 혼동될 수도 있음도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사상을 떠나서) 루신의 작품이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것은 누구나 마주치게 되는 운명이랄까, 인생이란 사거리에서 고뇌하는, 인간 루쉰이 펼쳐보이는 멋진 비애의 아우라때문일 것이다.
‘거리에 누워있는 수많은 개들을 피해…’루쉰은 특이하게도 그의 문장에 개를 등장시키길 좋아했는데 여기서 루쉰이 말하는 개란 단순한 개를 말한다기보다는 은유법으로서의 개… 나태, 무지, 야성을 얘기하는 것이며 숨기고 있는 발톱과 굶주림… 그리고 사나운 이빨을 말하기도 한다.
사람이 개를 경멸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맹견에 대한 공포심때문만이 아니라 인간 속에 내재하는 개의 본성때문이기도 하다. 청조말,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격변기에 중국민들을 개에 비교, 나아갈 바를 제시한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는 정말 하기 힘든, 총대를 메는 것이었겠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했고 또 루쉰의 고발정신이야말로 오늘날까지 그 용기를 칭송받는 진정한 문학, 뭇 영혼에 울리는… 종소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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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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