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유럽에서 보낸 나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 이후 첫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당선이 유력시 되던 후보자의 얼굴이 타임(아시아판) 표지에 실렸고, 대화가 오갈 때마다 외국인 동료들은 한국 정세에 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외신에서도 쉴 새 없이 남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 보도했다.
하지만 뜨거운 대선의 열기를 몸소 느끼면서도, 이상하게도 이번 대선에 대한 나의 관심은 평소보다 훨씬 더 미적지근했다.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된 데다 또 한편으로는 막장 드라마보다도 더 충격적인 국내외 정치판 이야기들에 하도 물려있다 보니 이제는 그 어떤 결과도 놀라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SNS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이제는 좋은 나라가 되길...” 등등 새로운 정권으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부푼 희망과 염원을 담은 투표 인증사진들이 속속 올라오는 가운데 치러진 대선의 결과가 나오고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투표 참여율이 어느 때 보다 높았고, 특히 예년보다 청년층의 참여율이 급증했다는 점에서 당선자가 누구인가를 떠나서 이번 대선은 성공적으로 치러진 민주주의 축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특정인의 당선이 국민 모두의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 기쁘지만 상대였던 홍 후보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은 것에 화가 난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러저런 이유로 화가 난다는 심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들을 답이 없는 멍청이들이라고 욕하는 극심한 편견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대선 결과가 나온 후 이런 논쟁은 한층 더 격화되는 것 같다.
문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국민 상당수의 의식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변화가 필요한 나라라면 정권이 바뀌는 것은 분명히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으로 정치 문화와 국민들의 생각이 마치 마법처럼 짠~하며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라 할 수 있을까?
유권자 모두가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던졌다. 단지 진보와 보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던 이도, 부패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야당의 정권은 무조건 깨끗할 것이라 생각하던 이도, 대선주자들의 대북정책에만 귀를 기울였던 이도, 자신의 입장에서 본 이익만을 고려했던 이도, 후보들의 눈에 보이는 행실과 이미지만으로 마음의 결정을 한 이도, 대세의 흐름만을 따라간 이도, 모두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살며 겪은 바가 달랐고 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나 역시 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흑백논리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며 잘난척 해왔다. 그렇지만 결국 대통령을 한 명만 뽑는 시스템에서의 선거는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흑과 백의 결과로 이어진다. 선거는 상대평가가 가능한 논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표권을 행사한 국민 그 누구도 미개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위한 최선을 선택한 것이다.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이상적인 민주주의이다. 다수결이 반드시 그 선택이 더 똑똑하다는 걸 입증하는 제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숫자에서 앞섰다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고집이야 말로 비민주적인 태도이다.
국민들 개개인이 생각이 다른 것일 뿐, 목표는 같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정치의 수준이 결정된다. 새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펼쳐 갈 것인가, 모든 국민들이 지켜 볼 일만 남았다.
우리가 놓여있는 상황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만개한 장미는 아름답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지 않는 장미의 아름다운 형상은 그저 한 순간일 뿐이다. 이번 장미대선이 민주주의의 꽃을 잘 피워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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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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