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어처구니없는 입장표명, 빈번한 태도변화, 거듭된 실수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더욱 심각한 해악은 타국의 국내정치에 트럼프가 끼치는 영향, 다시 말해 ‘트럼프 효과’다.
강력하고, 부정적이며 지속적인 트럼프 효과는 지난 수 십여 년에 걸쳐 미국이 쌓아올린 외교적 성과를 맥없이 허물어뜨릴 수 있다.
멕시코를 보라. 과거 수 십 년 동안 멕시코를 지배한 국민정서는 맹렬한 반미주의였다. 극단적 혁명운동에 의해 세워지고, 미국의 제국주의와 오만불손한 태도에 대한 반감을 연료로 활용하던 멕시코는 좀처럼 워싱턴에 협력하려들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쿠바의 풍경이 바뀌었다. 변했다기보다는 아예 뒤집어졌다. 멕시코시티의 현명한 지도력과 워싱턴 정치권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미국과 멕시코는 사이좋은 이웃이자 활발한 교역 파트너 겸 국가안보 차원의 우방국으로 거듭났다.
실제로 중국보다 훨씬 많은 미국 상품을 구입하는 멕시코는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미국의 수출시장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통과 이후 미국의 대 멕시코 수출액은 무려 445%나 늘어났다.
멕시코는 마약운반을 차단하고, 불법적으로 미국으로 입국하려 시도하는 수 만 명의 중앙아메리카 불법이민자들을 추방하는데 힘을 보태는 등 미국과의 국경보안에 협력하고 있다. 멕시코는 대부분의 국제협정과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우방이다.
이 모든 것은 언제건 변할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후보였을 때는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멕시코와 멕시코 국민을 겁박하고 비하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멕시코의 정치적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트럼프에게 저자세로 일관한다는 비난과 함께 가뜩이나 시원치 않던 엔리케 페나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멕시코의 차기 대통령은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유사한 반미성향의 사회주의자나 대중주의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2015년 여론조사에서 10%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안드레스 마누에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이를 30% 선으로 끌어올리며 내년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들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로페즈 오브라도의 승리는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오브라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멕시코는 대중주의와 민족주의에 의해 지탱되는 부패한 사회주의와 기능불능의 경제로 되돌아갈 것이다.
오브라도는 트럼프를 “네오 파시스트“로 묘사하는 한편 페나 니에토 행정부가 트럼프에 지나치게 약하다고 공격하고 워싱턴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월 그는 미국의 도시 몇 곳을 돌며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는 등 상징적으로 트럼프에 맞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제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드(THAAD) 관련 경비를 서울 측이 지불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구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시스템과 북한에 대한 공격적인 군사조치를 반대하는 세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트럼프는 한국이 한때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시진핑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가장 가까운 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게 여러 차례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한국은 대통령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행동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볼 후보는 좌파성향의 문재인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호감도가 3%를 기록 중인 멕시코의 경우처럼 맹렬하진 않지만 한국에도 반미정서가 다시 들어서고 있다.
이런 추세선이 굳어지면 미국의 한반도 외교정책은 향후 수 십년 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뜩이나 힘든 북핵 문제 처리는 한국이 친미주의를 배격하는 완강한 입장을 취할 경우 아예 불가능해진다.
멕시코 정부가 미국과의 협력을 거부하면 마약, 국경통제와 철새 노동자 등의 이슈를 다루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멕시코와 한국 외에도 트럼프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 곳이 또 있다. 현재 이란의 정치구도는 강경론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한때 확실시되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재선은 어려움에 처했다.
그를 겨냥해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비교적 온건한 로하니에 비해 반미주의 색채가 훨씬 강한 후보를 밀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던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는 트럼프와 그의 정책을 비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계 모든 국가의 친미주의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수세적 입장에 처한 반면 적들은 흡족해 하고 있다.
경험 많고 존경받는 정치인은 어떤 국가이건 자체적인 국내 정책을 갖고 있다는 결정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외교정책을 수립한다. 조악한 수사, 얼토당토 않는 요구, 졸속 정책과 비열한 행동은 모두 상대국의 지도자들을 운신의 여지가 없는 상자 안에 가두고 만다. 그들은 미국에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든다. 더구나 미국이 승리하려면 다른 나라들은 반드시 패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작심한 국가 지도자에게 굴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부동산 거래와 외교정책 관리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큰 차이점들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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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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