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성적표가 나왔다. 결과는 참혹하다.
헬스케어는 연일 패대기를 당하고 있고 행정부 세제개편안의 세부정보는 슈퍼마켓 영수증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대외무역에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겠다던 공약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허풍과 미미한 성과 사이의 간극이 이처럼 벌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기사만도 대략 7,000건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어림짐작이다. 언론기관의 쪼잔한 소인배들에게 분노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기꺼이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공언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최근 발표된 국내총생산(GDP) 보고서의 세부내용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다.
단기성장을 추적하는 경제학자들은 지난 수개월간 심리지표와 실물지표 사이의 특이한 갈라짐(divergence)에 주목해왔다. 여기서 심리지표(soft data)란 소비자 서베이와 기업심리지수 등을 뜻하고 실물지표(hard data)는 실질적인 소매판매 등을 의미한다.
보통 이들 자료는 서로 비슷하게 진행한다.(심리지표가 앞으로 나올 실물지표에 대한 일종의 유용한 조기경보시스템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대선 이래 이들 두 지표는 서로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뢰지수가 치솟은 반면 주식은 주춤댔고 경제활동이 호전된다는 실질적 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재미있는 일은 전반적으로 상승추세를 보이는 경제 신뢰지수가 민주당원 사이에서는 가파른 하락을, 공화당원 사이에서는 급격한 상승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정당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분명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미래를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들이 경제 전망을 실제로 낙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표를 던졌음을 확인하는 기회로 세베이를 이용하는 것인지 여부다.
소비자들이 경제에 강력한 신뢰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 낙관적 감정이 실천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다. 성장이 크게 둔화됐음을 보여주는 1분기 GDP 보고서는 사실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소비자들이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재고와 계절적 조정을 비롯한 기술적 이슈들은 근본적인 성장이 대단치는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비자 지출은 명백히 부진하다.
다시 말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혹은 진짜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기보다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선언으로 파악하는 편이 타당하다.
포커스 그룹과 트럼프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뉴욕타임스에서 다년간 근무하면서 내가 익힌 한 가지 원칙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틀리면 틀릴수록 더욱 더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든다는 점이다.
블룸버그가 벤 버냉키의 금리정책이 따라잡기 힘든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한 한 무리의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후 서베이를 예로 들어보자. 버냉키의 정책으로 저금리기조가 수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어진 이후에 실시된 서베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당초 견해가 틀렸다고 시인한 경제학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번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언론매체는 선거전 기간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정치/언론 집단이 트럼프를 무식하고 대통령직에 걸맞지 않는 성격을 지닌 부적격자로 여긴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따라서 트럼프에게 던져진 표에는 “하, 너희 엘리트들이 그렇게 똑똑하냐?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마”라는 강력한 감정적 요소가 담겨 있다.
이제 트럼프가 무식할뿐더러 기질적으로 대통령직 부적격자라는 사실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이 조만간 현실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분명 인간의 본성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트럼프의 완전한 끔찍함은 뒤틀린 방식으로 그에게 정치적인 보호막을 제공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들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고 시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트럼프주의는 아직 일상생활에 중대한 충격을 가하지도 않았다. 사실 트럼프의 최대 실패는 이미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다. 따라서 형편없는 100일 보고서를 언론의 편견으로 일축해 버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제방은 조만간 무너질 것이다. 나는 심사숙고 끝에 이 비유를 선택했다. 조지 W.부시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때를 기억해보라. 그의 지지율은 인기절정에 달했던 9/11 이후 점차 줄어들었으나 전체 하락 과정은 느리게 진행됐다.
그의 이전 지지자들에게 재고를 부추긴 것은 부시 행정부의 무감각과 무능을 TV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여준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참사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 같은 판단은 여론조사 추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트럼프에게 카타리나의 순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행정부 사보타지로 인한 의료보험체계 붕괴일까? 백악관이 전혀 감당하지 못할 경기침체일까? 아니면 자연재해나 공중보건 위기? 어떤 모습으로건 그 순간은 반드시 닥칠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2006년 여론조사에서 전체의 과반수가 앞서 열린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에게 투표했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후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찍었다고 말할지 지켜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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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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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조치고는 굉장히 공격적이다 싶었는데 유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이군요. 사실 실질경제지표는 약하게 나오는데 심리만 강한것으로 주가만 올라간다는것이 문제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