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무력한 소수당으로 추락을 거듭해온 민주당이 드디어 ‘첫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당의 요구가 대폭 수용된, 그래서 트럼프의 요구가 대폭 배제된, 연방 예산안이 어제 하원을 통과했다. 금년 9월말까지 적용될 1조1천억 달러 규모의 2017 회계연도 연방정부 지출예산안으로 오늘 내일 사이 상원 통과를 거쳐 대통령에게 보내질 것이다.
우려했던 정부 ‘셧다운’ 사태를 막아 줄 뿐 아니라, 트럼프 취임 후 처음 서명할 중요한 초당적 법안이지만 대통령의 심기는 별로 편치 않아 보인다.
예산안엔 트럼프의 ‘양보’가 한 눈에 드러난다. 트럼프의 핵심공약인 국경장벽 건설 기금도 빠졌고 추방군 확대 보강 예산도 없으며 트럼프 예산안에 강조된 대폭 지출 삭감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위협과는 달리 피난처 도시에 대한 연방기금도, 가족계획협회 기금도, 오바마케어 지원 기금도, 광부들의 의료보험 혜택 지원도 모두 삭감의 칼날을 피했다. 서슬 퍼랬던 환경보호청의 31% 예산 삭감은 1%에 그쳤으며 12억 달러를 깎일 뻔한 국립보건원 예산은 오히려 20억 달러나 늘어났다. 국방예산은 늘어났으나 그것도 트럼프가 요구한 증액규모의 절반 정도로 낮추어졌다.
지난 100여일 동안 민주당은 트럼프의 워싱턴에서 존재조차 희미한 채 무력감에 시달려 왔다.
연방대법관 인준만 못 막은 것이 아니다. 좌충우돌 트럼프 백악관은 수없이 문제를 일으키며 패배를 거듭했지만 대부분 자초한 것이거나 법원 제동, 혹은 공화당 내분 탓이었지 민주당의 투쟁 때문이 아니었다. 반 트럼프 ‘저항’의 함성은 그침 없이 전국에 울려 퍼지고 트럼프 비판에 앞장 선 뉴욕타임스의 구독은 부쩍 늘어났지만 민주당의 첫 100일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예산안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민주당의 입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방의회와 백악관을 다 장악한 공화당이지만 예산안 통과는 민주당의 지지가 없으면 안 된다. 특히 상원에선 공화당 52명 전원과 최소 8명의 민주당이 찬성해야 필리버스터를 막아 표결을 할 수 있는 60표가 확보된다. 요즘엔 하원에서도 공화당 내 극우파와 중도파가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바람에 주요법안 통과엔 민주당의 지지가 필요해졌다.
오랜만에 주도권을 쥔 민주당의 요구가 확실하게 반영된 예산안에 대해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일요일 밤이었고 뉴스가 전해진 월요일, 의회 민주당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의 영향력을 확인한 민주당의 희희낙락은 트럼프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승리’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대통령은 화요일, 트윗을 통해 자신의 예산안 실현에 장애가 된 상원의 필리버스터 규정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난장판을 정리하려면 ‘굿 셧다운’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으로선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까지로 치달았고 백악관은 또 대통령의 발언 논란을 진화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너무 나간 트럼프 발언에 제동을 건 것은 공화당 의회 지도부였다. 민주당의 환호와 백악관의 ‘발끈’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조용~했던 공화당은 화요일 오후 필리버스터를 폐지해 상원의 본질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공화당의 의도는 아닐지 몰라도, 정부 셧다운 모면이 주목적이었던 이번 예산안의 초당적 합의는 1당 독주 체제에서 꼭 필요했던 대통령 권한에 대한 의회의 견제역할을 수행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영향력 발휘한 야당으로서의 자신감은 회복했지만 민주당의 갈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이번 보다 훨씬 치열해질 9월 예산안 전쟁 등 의회의 입법 싸움만이 아니다. 민주당 자체의 문제다.
현재 민주당이 가진 자산은 ‘저항(resistance)’으로 불리는 트럼프에 분노한 풀뿌리운동의 열정뿐이다. 뜨거운 반 트럼프 에너지를 2018년, 그리고 2020년 민주당 승리의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데 아직은 구심점도, 계기도 준비되지 못한 상태다.
정치 환경은 나쁘지 않다. 트럼프는 지지층 확대에 별 관심이 없고 모든 권력을 다 가진 공화당은 내분으로 입법성과를 못 내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대안’으로 보이기만 하면 일단 성공이다.
그런데 ‘대선 참패’ 6개월이 지났지만 민주당엔 아직 뚜렷한 리더도 없고, 정해진 방향도 분명치 않다. ‘트럼프’라는 공동의 적은 있는데 공동의 메시지는 없다. 내분은 공화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경선에서 격돌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중도주의와 버니 샌더스의 포퓰리즘은 여전히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거둔 ‘첫 승리’를 계기로 민주당도 전열을 재정비 할 것이다. ‘반 트럼프’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민주당에 끌리지 않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를 참고할 만하다. 응답자의 67%가 말했다 : “민주당은 보통사람들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 자신들 일상의 어려움에 대해 민주당이 트럼프나 공화당보다 더 이해를 못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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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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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케어 통과하다고 난리쳐서중요한 예산에 대한 기사가 묻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