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잡아맨 시카고의 봄도 이제 쇠사슬에서 풀려나 기지개를 편다. 동네 어귀에 목련, 진달래, 개나리, 배꽃들의 향기가 맑은 연못 위에 반사된 화사한 햇빛에 젖는다.
봄은 내게 기쁨과 희망을 심어주지만 한편으론 괴로운 계절이다. 어김없이 한 쌍의 참새가 날아와 거실 처마 밑 차일의 쇠막대 위에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둥지를 지을 때는 주위에서 물고 온 지푸라기와 진흙 등으로, 둥지가 완성되어 새끼들을 키울 때는 새들의 배설물로 바닥이 어지러워진다.
처음 몇 년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둥지를 그대로 두었다. 열심히 집짓고 새끼들 낳아 키우는 참새부부의 헌신적 행동이 마음에 닿았고, 미 조류협회 회원인 내 양심의 표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손자들이 와서 놀다가 배설물을 통해 조류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는 가족들의 주장에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 후부터 매년 4월이면 한달 내내 참새부부와의 괴로운 싸움이 계속된다. 새 둥지가 1/3쯤 지어지면 작대기와 빗자루로 쓸어 내려야 한다. 그럴 때마다 무척 고통스럽고 죄스럽다. 살기위한, 종족보존을 위한 새 부부의 피나는 시도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최근 여행을 갔다 돌아오니 새둥지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할 수 없이 쓸어버리던 중 둥지 속 새알들이 깨지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잠을 뒤척거렸다. 간간히 악몽도 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둥지를 치우다 일종의 쾌감 같은 게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껴 깜짝 놀랐다. 참새부부의 참담함과 분노를 혹시 내가 즐기고 있지 않나 싶어서였다.
불교에서의 3대 죄악은 탐욕, 분노, 무지고, 성서에는 자만, 교만, 악인의 성공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3가지 어두운 면을 자애성, 이기심, 병적 심리상태로 본다. 굳이 하나를 더한다면 나는 가학성을 포함시키고 싶다.
가학성의 어원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요 작가였던 사드 후작의 이름에서 따왔다. 사드는 기독교문화가 위세를 떨치던 당시 성에 대한 자유와 성 활동의 정당화를 부르짖었던 사람이다. 가학성은 원래 침실의 성행위에서 유래되었다. 파트너에게 어느 정도의 신체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쾌감 등을 느낀다는 것이다.
후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가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도 신체적 고통에 성적쾌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변태성욕(Sadomasochism)을 주장했다. 지금은 범위를 넓혀 가학성은 변태성행위 외에 타인에게 공격행위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함으로써 즐거움과 만족감은 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법원 명령으로 30대 중반 남성이 정신감정을 의뢰해 왔다. 신체적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집을 나가자 초등학생 아들과 살고 있었는데 어린 아들이 집이나 학교에서 조금만 잘못해도 벽장에 가두거나 심하게 매질했다. 아이에게 멍든 상처가 계속 생기는 것을 관찰하던 학교 측이 경찰에 연락했던 것이었다.
그 남성은 아들을 때리면서 계부가 떠올라 더 때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아들이 울며 사정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그는 어렸을 때 학교 땡땡이 치고, 싸움질하고, 집안 물건을 훔치는 문제 학생으로 군인출신 계부에게 항상 맞고 자랐다. 처음 맞을 때는 아프고 화가 났지만 계속 맞다보니 고통이 쾌감으로 변했다. 그래서 계속 나쁜 짓을 하고 계속 맞고 자랐다는 이야기였다. 생리학적으로 고통과 쾌감을 전달해주는 신경회로와 그들을 주관하는 뇌 영역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가학적 성격을 제어할 수 없어 법과 정신과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학성을 깊은 무의식 속에 숨겨 놓고 있다. 언제든 쾌감을 주는 상황을 맞으면 뛰쳐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강 건너 불난 집 구경을 하거나 권투시합을 보며 열광하거나, 살인, 성적난폭, 강간, 폭력 등의 영화에 흥미를 쏟는다, 또한 무심결에 타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창피와 치욕을 주거나, 목적달성을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잔인함을 체험하면서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권력자의 몰락에 손뼉 치는 민중들의 모습도 집단 가학성의 한 패턴이다. 가학성은 이렇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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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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