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800년 전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있었던 일화다. 당시 부국강병책으로 천하패권을 도모한 제나라 장공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궁궐 밖 사냥터로 행차하자 백성들이 길가에 줄지어 엎드려 절했다. 하지만 벌레 한 마리가 감히 길 복판에서 앞발을 들고 서서 수레바퀴를 막는 시늉을 했다. 장공이 “맹랑한 놈이다. 저게 도대체 무슨 벌레냐”고 주위에 물었다.
수레꾼이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을 모르는 사마귀”라고 설명하자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천하무적의 장수가 됐을 터이다. 저처럼 기백 있는 장수가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 비록 미물이지만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 가라”고 지시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전국의 용사들이 장공 진영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고사성어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배경이 된 이야기로 한시외전에 실려 있다. 사마귀가 수레에 항거하듯이 제 힘은 생각지도 않고 강적에게 무턱대고 덤벼드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지칭한다. 앞발을 든 당랑(사마귀)이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 같대서 ‘당랑지부(螳螂之斧)’라고도 쓴다. 삼국지에도 천자를 등에 업은 조조의 군대를 당랑거철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장공 시대에서 거의 3,000년, 조조 시대에서 거의 2,000년이 지난 요즘 세상에도 당랑거철을 실감나게 연출하는 사람이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다. 한국·미국·일본을 비롯한 유엔과 큰 형격인 중국까지도 누누이 경고했지만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해 결국 핵보유국이 됐다. 이젠 그 핵폭탄을 미국 본토로 날리기 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이틀 전 미국을 도발하기 위해 새로 만든 영상물을 SNS에 띄웠다. ‘멸적(滅敵)의 조준경 안에 들어 있다’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비디오는 백악관을 방아쇠의 십자초점에 맞춰 놓고 “침략과 도발의 첫발을 떼는 순간 최후멸망이 시작될 것”이라고 호언한다. 김일성 생일이었던 지난 15일의 평양 퍼레이드에 등장했던 미사일 등 신 무기 쇼도 재현됐다.
북한의 대외홍보 웹사이트 ‘메아리’에 뜬 이 2분30초짜리 비디오는 또 미 해군 항공모함과 폭격기들이 북한군의 포격에 맞아 불덩어리가 되는 장면을 띄우고 “초대형 과녁이 된 미련한 비육(동물)들, 제 죽을 줄 모르는 가련한 부나비들. 기어들 테면 기어들어 봐라. 세계가 부러워하는 동방의 핵 강국, 아시아의 로켓 맹주국이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떠벌인다.
이 비디오를 한국 언론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북한의 최근 공갈 비디오는 워싱턴포스트에만 잠깐 비쳤다. 김일성 3대의 상습적 허풍에 놀아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연방상원 전체 의원을 백악관으로 초치해 북한 위협문제를 브리핑하며 무력 방법보다 경제제재 및 김정은 정권의 고립화 정책을 더 강화하겠다고 밝힌 점을 크게 보도했다.
하긴, 김장은의 당랑거철은 대미도발보다 날로 불안해지는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한 용도가 더 크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사드가 배치된 것 말고는 종전과 달라진 게 없다. 북한은 여전히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할 터이고, 미국은 여전히 김정은의 당랑거철에 스타일을 구길 터이고, 한국국민은 여전히 전쟁불감증을 벗어나지 못할 터이다.
고사성어가 모두 맞는 말은 아니다. 김일성 가문은 ‘권불십년’은커녕 70여년간 권좌를 누려온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딱 들어맞는 고사성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열흘 간 피는 꽃이 없다는 뜻인 ‘화무십일홍’과 비슷한 ‘근화일일영(槿花一日榮)’이다. 사람의 영화는 하루 만에 지는 무궁화 꽃처럼 덧없다는 뜻이다. 왠지 근화가 근혜(槿惠)로 읽혀져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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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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