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4년 전 일이다. LA 한인타운 내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한 가족이 팁 문제로 웨이트리스와 한판 붙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가족은 밥을 먹는 도중 서비스가 맘에 안 들어 식사 후 테이블에 팁을 놓지 않고 나왔는데 이에 열 받은 웨이트리스가 밖으로 쫓아 나와 항의한 것. 팁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항의한 웨이트리스의 ‘용기’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서버에게 팁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라고 하지만 그저 그런 서비스를 받았다고 판단되면 손님 입장에서 팁을 안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노 팁’에 항의한 직원에 대해 손님측 대응 또한 매우 거칠었는데 급기야는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면서 웨이트리스의 태도를 나무랐고, 식당 매니저가 나와 웨이트리스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팁은 16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술집을 찾은 손님들은 웨이터에게 술을 빨리 가지고 오라는 뜻에서 급행료를 종이에 말아 건네곤 했는데 그 종이 위에 ‘To Insure Promptness’(신속 보장)의 머리글자인 T.I.P.를 적어 넣은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팁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 팁이 보편화했다. 팁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팁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식당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그런 경우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음식을 나르고, 물을 채워주고, 접시를 치우는 등 고된 노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바로 팁이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음식값의 15% 정도를 팁으로 지불해왔다. 그런데 주류 요식업계를 중심으로 ‘팁 15%’ 시대가 저물고 있다.
웬만한 식당은 손님들에게 최소 18%의 팁을 낼 것을 권한다. 어떤 식당은 손님이 카드를 건네면 아예 18%의 팁을 세금과 함께 음식값에 붙여서 영수증을 프린트한다. 은근슬쩍 기본 팁 액수가 오르는 현상은 소비자 입장에서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 같은 ‘팁 인플레이션’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미국인이 꽤 많다. 특별한 서비스도 없는데 팁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업소가 많아진 것 또한 소비자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 종업원이 손님 테이블로 와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업소들도 카운터에 ‘팁 박스’를 놓아두는 경우가 많다.
고객 입장에선 “도대체 무슨 서비스를 한다고 팁을 달라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팁은 식당과 호텔 등에서 서비스가 좋았거나 특별한 용건을 의뢰했을 때 얹어주는 보상 개념이지만 하찮은 서비스를 받아도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골칫덩이’로 변질된 지 오래다. 미국인의 3분의1은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의무감 때문에 팁을 남긴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미국에서 팁을 없애는 것은 법을 없애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대도시 식당을 중심으로 고용인에 대한 팁을 사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고객은 여전히 팁을 지불하는데서 보듯 팁 문화는 미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팁을 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발레 파킹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업소라면 더욱 그렇다. 웨이터 또는 웨이트리스가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 놓고 계산할 때까지 “더 필요한 거 없으신가요?”라는 질문 한번 안 하면 누가 팁을 주고 싶을까. 손님이 지적이라도 하면 “일손이 부족해서”라고 변명한다.
팁을 ‘거저먹는 돈’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많은 업소들은 ‘고객은 왕’이라는 말을 비즈니스 경영의 기초로 삼는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지 말고 업소들은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면서 만족을 원한다. 업주든 종업원이든 고객이 있기에 비즈니스와 일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진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팁은 두배, 세배로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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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훈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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