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 혹은 ‘음식과 포도주의 나라’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먹을 것이 많아 생활의 여유가 있고 술 한 잔 하며 대화를 주고 받는 가운데 문화와 예술은 싹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프랑스로 불리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예술적 전통은 깊다. 선사시대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 유산으로 불리는 동굴 벽화가 대부분 남부 프랑스에 집중돼 있다. 지금부터 3만5,000년에서 3만8,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쇼베와 1만8,0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라스코 동굴 벽화가 모두 이곳에 있다. ‘선사시대의 시스틴 채플’로 불리는 이 동굴에 그려진 벽화의 수준을 능가하는 서양 예술은 아직 없다.
로마가 망한 후 혼란스러웠던 중세에도 남부 프랑스는 가장 풍요롭고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남았다. 중세의 기사도 정신과 궁중 음유시인들의 문학 작품이 꽃핀 것도 이곳이다. ‘낭만’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로맨스’인 것은 낭만적인 연애 문학작품이 대부분 로마어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서도 프랑스의 독보적인 위치는 흔들리지 않았으며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는 유럽의 수도나 다름없었다. 문화 예술뿐 아니라 패션, 음식부터 계몽철학 등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가 중심을 차지하면서 프랑스어는 유럽의 만국 공통어가 됐다. 지금도 만국 공용어를 ‘링가 프랑카’(lingua franca)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다시 한번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정신은 나폴레옹을 통해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됐으며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몰락할 때까지 프랑스는 한동안 정치적으로도 유럽을 지배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815년 이후 프랑스는 한번도 나폴레옹 때같은 ‘프랑스의 영광’을 누려보지 못했다. 1870년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는 어설프게 나폴레옹 흉내를 내 프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포로가 되는 치욕을 경험한 후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제2차 대전 때는 마지노 선만 믿고 있다가 우회해 들어오는 나치 독일에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참패했다. 1954년에는 베트남인들에게 디엔비엔푸에서 박살난 후 인도차이나 반도를 떠나야 했고 1962년에는 8년에 가까운 알제리 내전에서 진 후 물러났다.
이런 과거의 정치 군사적 패배보다 더 심하게 프랑스 국민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불황과 이질 집단으로 남아 있는 500만 회교도 이민자들이다. 프랑스는 근 10년째 10%가 넘는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연 경제 성장률은 1%가 될까말까다.
대부분 저소득층인 회교 집단은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비난 속에 차별에 시달리고 있고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은 극렬 회교 이데올로기에 쉽게 넘어 간다. 프랑스가 유럽 회교 테러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주말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중도 개혁파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극우파인 마린 르펜이 1, 2위를 해 2주 후 열릴 결선에 나오게 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 국민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예선에서 탈락한 다른 후보들이 잇달아 마크롱 지지를 호소하면서 그의 당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르펜이 당선될 경우 회교도 이민자 추방과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등 극단적인 조치가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지러운 유럽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게 불을 보듯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 사회당의 브느와 아몽이 불과 6%의 지지를 얻고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모델로 삼는 극좌파 장-뤽 멜랑숑이 20%에 가까운 표를 받은 것을 보면 지금 프랑스 정국이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극우파 르펜과 극좌파 멜랑숑의 표를 합치면 40%에 달한다.
프랑스의 집단 간 알력을 줄이고 회교 테러가 뿌리 내리는 것을 막으려면 경제성장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높은 세율과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39살 난 마크롱뿐이다. 7일 열릴 결선에서 프랑스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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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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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세계가 막장 정치가 유행인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