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주째인가. 미국의 주요방송 네트워크들이 밤낮 없이 한반도 위기상황을 다루어 온 것은.
“제 2의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서울 일원에서 첫 48시간 동안에만 최소한 10만 이상의 희생자가 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만일의 경우 사망자 통계 수치를 읽어 내는 TV 캐스터들. 그 모습이 섬뜩하게 비쳐진다.
‘잔인한 4월’이라고 했나. 그 4월 내내 봇물을 이루어온 미 언론들의 한반도 위기 보도는 결국 한 가지 의제로 모아진다.
처음에는 ‘블러핑’(bluffing)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전진이 빨랐다. 핵과 미사일이 완성단계에 이른 것이다. 10~16개로 추정되는 북한 소유 핵탄두는 3년 후에는 100개가 넘는다는 예상이다. 거기다가 ICBM(대륙간탄도탄)개발도 멀지 않았다. 김정은은 미국의 도시들을 날릴 수 있는 핵 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위기다. 그 사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보도의 초점은 이 한 핵심의제에 몰리고 있다.
전쟁 억지력(deterrence)확대가 방법이다. 일각에서의 주장이다. 과거 소련과의 대결상황에서 통한 방식이다. 그러니 북한에게도 통한다는 주장이다.
전쟁억지력은 이성(理性)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다. 소련은 미국의 최대의 적이었다. 그러나 합리적이었다. 만일의 핵전쟁 발발 시 공멸밖에 없다는 데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김정은의 북한은 과연 그런 체제일까.
수령유일주의 북한체제는 컬트집단에 가깝다. 그 체제를 워싱턴포스트의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거대한 감옥이라면 북한은 개미집단 같다.” 거기다가 소년독재자 김정은은 최악의 로마황제 칼리쿨라와 비유된다. 그 칼리쿨라에게 이성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쟁 억지력은 북한에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쟁억지력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 방법은 강력한 제재를 통한 도발 예방(prevention)이다. 미사일을 쏴댄다. 핵실험을 감행한다. 그 때마다 동원된 게 이 방안이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 그 중국이 제재 흉내만 냈던 거다. 핵무장 북한은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과의 대치상황에서 나쁠 게 없다. 북한은 또한 중요 완충지역 역할을 하고 있다. 전략적 자산인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베이징은 북한제재에 극히 미온적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많은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관련해 한 가지 큰 그림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중국에 의한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통해 평화적 해결을 시도한다. 안 되면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미-중 합작으로 북한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중국은 그러면 왜 종전과 달리 북핵문제 해결에 미국에 협조적일까.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된다. 중국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환영할 사태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득이 따르니까. 그러나 전쟁은 곤란하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ICBM을 개발해 미 본토를 위협한다. 미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인 것이다. 트럼프뿐이 아니다. 미국 조야가 모두 같은 인식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어도 대응방안은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예방적 군사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베이징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서둘러 북한제제에 나선 것이다.
먼저 사드가 배치됐다. 북한의 핵위협이 고조되면서. 한국뿐이 아니다. 일본에도 배치될 수 있다. 그 다음은 대만이 될 수 있다. 사태가 더 악화될 경우 전술 핵의 한국재배치도 가능하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 고조된다. 중국이 비협조적 태도를 취함에 따라.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한국의 자체 핵개발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온다. 이는 중국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다. 중국이 나설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먼저 중국이 나서고 안 되면 미국의 군사력을 동원한 해결도 불사한다’-. 이 전략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단기적이고 최소한의 목적은 핵실험 동결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레짐 체인지가 아닐까.
그 레짐 체인지가 그렇다. ‘외과수술식(surgical) 레짐 체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일부의 관측이다.
중국의 완충지역으로서 북한체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아니, 계속 존속시킨다. 이 점을 ‘빅 딜’을 통해 미국은 베이징에 보증을 한다. 그러면서 김정은을 비롯한 이른바 백두혈통만 제거하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정치수용소다. 그 가운데 북한주민의 고통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고모부를 처형한데다가 배다른 형을, 그것도 독극물로 암살했다.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다. 그 김정은 통치는 유혈과 공포의 통치로 그 잔학성에 있어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 소년독재자를 제거하면서 수령유일주의체제를 떠받쳐온 핵도 폐기한다. 중국으로서도, 러시아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엘리트계층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북한을 친중 체제로 그대로 존속시킨다는 조건이 붙을 때에는.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가인 김정은 체제와의 협상은 미국은 물론, 서방의 정서상 도덕적으로 받아드릴 수 없다. 그리고 자이언트는 난장이와 전쟁억지력을 통한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 법이다. 전쟁억지력을 통한 평화적 공존은 열강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스트래터지스트지의 진단이다. 길기만 했던 터널, 뭔가 그 끝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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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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