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워싱턴은 막장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궁중 암투’ 스토리로 시끌시끌하다. 출범 100일을 눈앞에 둔 도널드 트럼프 백악관 내부의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끝에 이제 막 첫 라운드의 승패가 드러났다. 측근들조차 앞일을 헤아리기 힘든 대통령의 총애를 차지하기 위해 이너서클 참모들이 벌이는 ‘왕좌의 게임’이다.
‘대통령의 영혼’으로 불리는 절대 권력이었던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가 추락하면서 대통령의 사위이자 선임고문인 재럿 쿠슈너와 골드먼삭스 출신의 국가경제위원장 게리 콘 등 실용적인 뉴요커 그룹이 날아올랐고, 배넌 추종세력과 제3의 그룹들은 이들의 머지않은 추락을 확신하며 칼을 갈고 있다…누가 선택받고 누가 내쳐지는지, 온라인에 떠도는 가십 같기도 한 이들의 권력다툼은 그러나, 흥밋거리로 흘려 넘기기엔 너무 중요하다.
국가정책 방향에 끼치는 그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을 절대가치로 내세운 국수주의자 배넌의 몰락과 중도적 실용주의자 쿠슈너의 승리로 드러난 첫 대결의 결과는 이미 지난주부터 트럼프 정책의 극명한 반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 캠페인 내내 적대적 공격의 대상이었던 중국은 더 이상 ‘환율조작국’이 아니고, 나토 역시 ‘무용지물’이 아니며, 특수층만 배불리게 한다던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에 도움 되는’ 좋은 기관이어서 없애지 않을 것이다. 해외분쟁 개입 반대 입장을 바꿔 시리아 공습을 단행했고, 전면폐지를 약속했던 자유무역협정들도 재협상 정도로 수위조절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표 공약 뒤집기의 주요 배후가 참모들의 권력투쟁 결과라는 게 드러나면서 백악관 암투에 대한 분석과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는 해’ 배넌과 ‘뜨는 별’ 쿠슈너의 대결로 압축되는 비슷비슷한 보도 중에서 NBC뉴스가 좀 더 파헤친 ‘왕좌의 게임’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의 총애를 구하는 참모들의 분파는 두개가 아니라 사실상 4개라는 것이다.
현재 가장 뜨는 것은 쿠슈너 그룹이다. 쿠슈너는 물론이고 지난주 중국, 나토 등에 대한 정책반전에 일조한 콘 위원장도 새로운 최측근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자의 오른팔에게 허용된 수명은 통상 별로 길지 않다. 적대적 배넌을 제치고 직접 접촉을 취해 온 중국의 전략에 힘입어 성공적 미중회담에 대한 크레딧을 얻은 쿠슈너는 트럼프에겐 ‘절대적’인 가족사단이긴 하지만 아직은 경험도 없고 검증도 안 된 젊은 참모에 불과하다.
배넌의 반대를 무릅쓰고 쿠슈너의 추천으로 입성한 콘의 입지는 더 취약하다. 트럼프 백악관의 최우선과제 중 하나인 세제개혁의 주도권을 놓고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과 암투를 벌이고 있는 그는 거의 불가능한 ‘초당적 세제개혁’을 꿈꾸지만 성공여부는 지난달 헬스케어개혁 때 못 이룬 공화당의 단합에 달렸다. 실패할 경우 콘의 몰락은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중국에 대한 비판 완화 등 반전은 있었지만 ‘미국 우선’ 국수주의 정책의 부음을 선고하기는 아직 이르다. 배넌의 몰락을 거울삼아 트럼프 대선승리의 원동력이었던 대중영합·국수주의 정책을 계속 추진하려는 참모그룹은 아직 건재하다. 반이민 정책의 기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과 보호무역주의자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 그리고 줄을 바꿔 쿠슈너 쪽으로 갈아타려는 배넌의 충복 스티븐 밀러 등이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에 실린 프랭크 브루니 칼럼이 배넌의 ‘실수’를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 배넌 몰락의 카운트다운은 지난 2월 타임지가 그를 ‘위대한 조종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표지인물로 보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의 상관을 ‘꼭두각시’로 만든, 보좌관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자신이 ‘스타’가 아닌 조연임을 망각했다. 더구나 공동주연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트럼프인데…)
배넌의 국수주의파와 쿠슈너의 실용주의파 외에도 이들에 비해 존재감은 약하지만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의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그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극우 보수파도 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가까운 프리버스는 헬스케어 개혁 실패 후 입지가 한층 약화되었고, 정치 초보생들로 가득 찬 백악관에서 통치경험 풍부한 펜스의 그룹 역시 하원 극우파의 반란으로 헬스케어 개혁이 무산된 후 자숙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 출범하는 백악관 내부의 권력투쟁은 워싱턴에선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아웃사이더’ 대통령들의 집권초기에는 더욱 그렇다. 실용주의 비서실장과 보수주의 고문의 갈등으로 레이건 행정부는 호된 성장통을 앓았고, 빌 클린턴의 백악관은 ‘새로운 민주당’을 자처하는 참모들과 전통적 리버럴 사이의 분열로 어수선했었다.
당시의 분열이 수습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통치방향에 대한 레이건과 클린턴 대통령의 확고한 주관이 꼽힌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 백악관의 암투는 좀 다르다. 현재 대통령의 통치방향도 정확히 알 수가 없는데다 앞으로의 전망은 그의 모든 면이 그렇듯이 예측불허다.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무관심 때문일까, 아니면 무지 때문일까. (그는 헬스케어가 이렇게 “복잡한 것”인줄도, 북핵 대처가 전혀 “쉽지 않다”는 것도, 중국이 “오래전 환율조작을 중단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대통령이 아닌가!)
앞으로 4년, 백악관 궁중 암투의 ‘네버-엔딩’ 여정이 될 것이라는 답답한 예보를 뜻한다. 워싱턴 D.C. 펜실베니아 애비뉴 하얀 건물 내 암투 드라마의 전개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계속 바뀌는 ‘왕의 오른팔’에 따라 민생의 방향까지 왔다 갔다 하는 끊임없는 진동상태가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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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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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초보자들과 정치 무뇌아 트럼프 그리고 극우 인사들의 득세는 한국 박근혜 정부와 비슷한 구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