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로 생긴 프로그램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니 갑자기 나에게 자유의 시간이 생겼다. 말하자면 억지자유라고 해야 할까? 마땅히 기다릴만한 장소도 없어 황금같은 나만의 시간을 지내지만 실상은 오도 가도 못하는 방랑자 신세에 어딜 가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 보낼 친구들을 애매한 주말시간에 불러낼 수도 없는 일이고, 샤핑몰도 멀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한집 걸러 커피숍에 빵집이 즐비한 한인타운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갈 길을 잃었다. 문득 남편 지인이 작은 커피숍을 열었는데 손님이 많이 없어 걱정이라는 말이 생각나 커피 마시기에 한적하니 좋겠다 싶어 찾았다. 많지 않은 테이블에 손님들은 제각각 공부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구석에 남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마쳐야 할 작업을 위해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과 책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그런데 왠지 쭈뼛거리게 된다. 학창시절 내 돈 써가며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 집중하기도 힘든 카페에서 굳이 시험 공부하러 가는 내게 하던 부모님들의 타박이 떠올랐다. 고리타분한 태고적 얘기를 하는 부모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신세대임을 자칭하며 드나들던 익숙한 곳인데, 이 날은 혼자 컴퓨터 꺼내 앉아 일을 하는 게 왜 이리 낯선지 내 자신조차 당황스러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가진 이 자유는 밖에서 내리는 뜻밖의 춘삼월의 눈만큼 참으로 불편했다. 의도치 않게 생긴 시간에 혼자 앉아 할 일 하는 내가 더 이상 젊은이들의 패기처럼 자유롭거나 호기로워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모님세대와 부모가 된 세대 그 어디쯤엔가 끼어 그 존재감의 무게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까닭일까.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나라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 자유와 억압 그 어딘가에서 저울의 무게추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몹시 불안정하고 헷갈리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타국에 이민 와서 제 나라 언어와 문화가 익숙한 우리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우리의 2세들은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고 있고, 눈만 뜨면 쏟아지는 사건 사고 속에서도 인류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후세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기대를 걱정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또 누구든지 꿈을 가지면 반드시 이룰 수 있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자유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는 이 나라는 이제 자국의 이익과 안정을 위해서 서류미비자들을 본국으로 추방시키고 있다. 최소한의 사람들의 모임 안에서도 지켜내야 할 질서와 규율이 있으며, 존재유무에 영향을 주니 국가와 국가사이의 약속이나 법은 말로 강조할 필요도 없고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얼마 전 학교에 딸을 등교시키다 이민국경찰들에게 딸 앞에서 잡혀간 아빠의 사연, 버지니아에서는 가족이 모두 한국에 방문했다가 아이들과 아빠만 미국입국이 허용되고, 엄마는 서류에 결격사유가 있어 더 이상 미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는 사연도 들린다. 이런저런 안타까운 사연들에 이민자로서, 부모로서, 딸로서 그리고 전 인류의 평등과 자유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써 뭔가 모를 법과 질서사이의 자유로움과 강제성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의 조국 한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바람 불면 날아갈까 조심조심 키우던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에서 3년 넘게 아이들을 찾아오지 못한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한 나라를 개인의 것으로 여긴 탓인지 국민들의 신음은 마치 남의 일인 양 무시하고 자신의 호의호식에만 관심을 가진 자들도 있다.
우리의 조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군중들이 가슴속에서는 울분과 실망으로 가득하지만 유혈사태는 고사하고 집회 후 쓰레기마저 스스로 치우고 평화롭게 촛불시위를 계속하며 국민 대단결을 통해 대통령탄핵과 구속이라는 결과까지 얻기도 한 나라이다. 예상 못한 결과에 매일 사저 앞을 찾아와 탄핵무효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날카로운 칼로 부스러기 없이 갈라진 양면일 수 없으므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할 여러 가지 문제들과 고통들은 존재 할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에게도 불편하지 않은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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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미/갤러리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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