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며칠 전 삶은 계란 2개를 냉장고에서 꺼내니 조금 차가운 것 같아 마이크로 오븐에 넣고 1분을 클릭했다. 다 됐다는 신호가 울려 오븐에서 접시를 꺼내는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나더니 앞이 캄캄해졌다. 들고 있던 접시가 땅에 떨어진 걸 보니 내가 몇 초 동안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오븐 문을 열 때 뜨거워진 계란이 폭발하면서 껍질과 내용물들이 내 얼굴로 뿜어진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화끈 했지만 다행히 2도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삶은 계란을 데울 때 보통 30초로 충분했는데 왜 1분으로 시간을 맞추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작스런 외부 자극에 따른 우리 뇌의 연대작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계란 터지는 소리로 인한 청각자극은 먼저 갑작스런 감정의 움직임을 주관하는 대뇌 변연계의 해마로 보내진다. 해마는 또한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곳으로 청각뿐 아니라 시각, 후각, 촉각을 통해서도 기억의 소재를 모은다.
해마에 모인 정보들은 변연계의 다른 영역인 편도체로 보내진다. 편도체는 이들 정보를 분석하여 유쾌하거나 불쾌한 감정으로 분별한다. 심한 불안과 두려움 같은 불쾌한 감정이 생겼을 때는 이성적 사고를 주관하는 전두엽에 정보를 보내지 않고 편도체가 직감적으로 대응한다. 싸우거나, 도주하거나, 꼼짝 않고 죽은 체 하거나의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도록 지령을 내린다.
편도체의 지령은 하부기관인 시상하부에 전달되어 자율신경계의 신체반응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해마-편도체-시상하부로 이어지는 기전은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왔기에 지금도 인간이 저항할 수 없다.
뇌는 단단한 두개골, 뇌와 두개골 사이에 있는 2개의 뇌막, 그리고 두개골과 뇌막들 사이에서 외부충격을 완화시켜주는 뇌척수액이 보호한다. 갑작스런 충격을 받으면 뇌가 심하게 흔들려 뇌에 멍이 든다. 멍든 뇌는 주위에 있는 신경세포와 신경조직망에 손상을 주어 그 부위의 고유기능뿐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여러 영역의 증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뇌손상은 눈에 보이는 외상성 뇌손상과 볼 수 없는 폐쇄성 손상으로 나눈다. 외상성 손상은 두부에 어떤 빠른 물체의 충격이나 폭발 시 일어나는 진동이고, 폐쇄성 손상은 뇌 자체의 감염, 종양, 치매, 파킨슨 등의 질환으로 야기된다.
뇌손상은 특히 70세 이상 노인층에 일어나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근육위축과 균형감각 저하로 인해 잘 넘어지는 노인들의 만성격막하 출혈은 넘어진 후 몇 주나 몇 개월 뒤에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가벼운 중풍 정도로 생각하여 그냥 지나치거나 민간요법 등으로 치료시기를 놓칠 수가 있다.
대부분의 뇌손상은 경증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잠깐 의식을 잃는 뇌진탕 케이스다. 잠깐 동안의 의식소실은 의식 중추인 뇌간의 상행성 망상활성계의 일시적 혼돈 때문이다. 하지만 뇌손상 후 10분 이상 의식을 잃거나 두통, 어지러움이 지속되거나, 물체가 두개로 보이거나, 발작, 구역질과 토함, 정신혼돈 등이 나타나면 바로 의사를 찾아야 한다.
이런 경우는 인지기능과 집중력 저하, 회상능력 감퇴, 새로운 지식 습득의 어려움, 그리고 성격변화, 수면장애, 충동적 행위로 인한 신경 정신질환의 위험이 많기 때문이다. 뇌손상 후 가장 흔한 정신질환은 불안증, 우울증, 약물남용증이고, 먼 훗날 치매나 파킨슨 병에 걸릴 위험성도 4-5배 높다. 가끔 현실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증(psychosis)을 일으켜 응급처치가 필요할 경우도 생긴다.
2차 대전 후 미친 것 같지는 않은데 사고와 행동이 이상해진 제대군인들이 많았다. 지금은 이라크, 아프칸 파견 군인들의 많은 수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가족과 이웃들은 그들이 전장에서 돌아오더니 사람이 확 달라졌다고 호소한다. 뇌손상 때문이다.
뇌손상은 이제 전쟁터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 피해자, 운동선수, 가정폭력 희생자, 고문과 학대를 받은 죄수 등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므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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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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