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교수·칼럼니스트>
선거운동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끔찍한 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추진해 해외로 빠져나간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는 공약을 자신만만하게 내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트레이드로 불리는 트럼프 표 무역정책이 가동 중이라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트레이드에 어떤 조치들이 담길지 짐작케 할 만한 단서도 없다.
트럼트는 2주전 금요일 백악관에서 2건의 새로운 무역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짐작건대 서명식의 의도된 목표는 그의 무역정책이 의미 없는 떠들썩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위한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문제의 행정명령은 전문용어를 사용하자면 속이 텅 빈 공갈빵(nothingburgers)이었다.
첫 번째 행정명령은 무역적자의 원인에 관한 보고서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그는 지금부터 해당 이슈를 공부하겠다는 말인가? 두 번째 행정명령은 사소한 관세징수 이슈를 다룬 것인데 그 내용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서명한 법안의 복사본을 방불케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날 서명식에 참석한 기자들은 트럼프에게 무역정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마이클 플린의 러시아 내통설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화가 치민 트럼프는 행정명령에 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서명식장에서 뛰쳐나갔다.(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주섬주섬 행정명령서류를 주워갔고, 백악관은 후에 대통령이 문서에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불상사는 실패한 정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완전한 본보기에 해당한다.
업계는 무역에 관한 한 트럼프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은 듯 보인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신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잠시 주춤했던 생산공장의 해외이전도 재개됐다. 트윗에 위한 무역정책은 아무래도 제 수명을 다 한 듯싶다.
투자자들 역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멕시코 화폐단위인 페소는 미국 대선 이후 16% 급락했으나 트럼프 취임식 이후 하락폭을 거의 모두 만회했다.
지난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안 초안이 의회 주변에 나돌기 시작했다; 대선후보 시절 트럼프는 이제까지 미국이 체결한 “최악의 무역협정”이라고 혹평했지만 개정안 초안은 대대적인 변화 대신 현 해정부가 추진하는 온건한 수정조항들만 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분명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근로계층 지지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표 무역정책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빈야민 아펠바움의 말대로 “으름장만 컸지 회초리는 작은” 공갈빵으로 요약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아마도 독자들이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트럼프가 무역협정을 공격했을 당시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예를 들어 트위터 통수권자의 말을 들어보면 NAFTA는 미국이 협정 상대국에게 일방적으로 안겨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NAFTA에 따라 멕시코는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하했다. 미국도 국경을 넘어오는 멕시코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내렸지만 인하폭은 훨씬 작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조작으로 자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인다는 트럼프의 거듭된 주장도 마찬가지다. 6년 전까지는 맞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중국은 환율 하락이 아닌 상승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선거전 중 무역에 관한 트럼프의 헛소리는 별로 손해날 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토록 재협상을 부르짖었던 무역협정이 그다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당연히 다음 수순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을 턱이 없다.
바로 이 때문에 트럼프가 직면한 두 번째 거대한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다: 과거의 무역협정은 그 내용이 무엇인건 현재의 경제에 깊숙이 박혀 있다.
자동차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으로선 미국의 자동차산업, 캐나다의 자동차 산업,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을 논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다.
대신 우리는 단단히 통합된 북미 자동차산업을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차량과 부품이 대륙을 종횡으로 오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완성된 자동차는 이들 3개국에서 건너온 부품들로 채워진다.
꼭 이런 식이 되어야 할까? 아니다. 30%의 관세를 부과하면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통합된 자동차 산업은 다시 국가별로 분리되겠지만 전환과정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차이나 쇼크”에 관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말한다: 1990년대에서 2007년에 이르는 기간 중국의 급속한 수출성장이 미국의 일자리와 커뮤니티에 미친 파괴적 효과가 중국 쇼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역행은 또 다시 일자리와 커뮤니티 전반에 고통을 안겨주는 “트럼프 쇼크”를 만들어 낼 것이고 말하기 좀 이상하지만 소위 대중영합주의 정권(populist regime)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부 대기업들에게도 고통을 줄 것이다.
요점만 말하자면 트럼프트레이드는 트럼프케어를 좌초시키고 태워버린 바로 그 벽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의 전임자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꼴을 오직 자신만이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며 백악관에 입성했다. 수백만 명의 지지자들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나 미국을 통치하는 것은 리얼리티 TV와는 다르다. 몇 주전 트럼프는 “헬스케어가 이처럼 복잡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투정을 부렸다. 이제 그는 무역정책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사람들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폴 크루그먼 약력
-예일대 경제학부 졸업, MIT 경제학 박사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현 뉴욕시립대 경제학 교수
-1999년~현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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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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