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비판나치가폴란드아우슈비츠에세운죽음의수용소에서살아남은유대인들. 독일의유대인학살에는폴란드인도가담했으나, 피해자로남고싶어하는폴란드인들은이를인정하지않는다
21세기민족주의의큰특징은비극적희생의기억을자기정당화의기제로삼는다는점이다. 제국의민족주의든식민지의민족주의든모두가녀린희생자의이미지가영웅적인투사상을대체하기는마찬가지다. 9^11 테러의기억에기생하는미국의민족주의나유고내전당시세르비아의자국대사관에대한미군의오폭(?)에서‘백년국치’의기억을끄집어내는중국의민족주의를보고있노라면, 실소하지않을수없다.
글로벌, 피해자기억경쟁을불러오다
지구사정을잘모르는외계인이아니라면, 지구위의민족중누가감히미국과중국민족에대한가해자임을자처하겠는가? 미국과중국마저희생자라니, 인류역사는온통희생자의역사일뿐이라는착각에빠지기십상이다. 21세기민족주의의코드가이처럼투쟁적영웅주의에서수동적희생자의식으로이동한배경에는지구화와더불어새로등장한‘전지구적공공영역/시민사회’가있다.1990년대CNN 등이생생하게전한르완다의제노사이드나구유고슬라비아의내전당시인종청소의참혹상은국경을넘어가해자에대한분노와희생자에대한연민을전지구적시민사회에불러일으켰다. 이른바‘내면적지구화’과정이일어난것인데, 이에따라덩달아홀로코스트나식민주의의폭력에대한비판적기억문화가형성되기에이르렀다. 21세기에이르러‘일본군위안부’문제가한반도와동아시아의경계를벗어나전지구적이슈가된것도이러한배경에서였다.그러나‘내면적지구화’가기억의코스모폴리타니즘이나국제주의를가져왔다고주장하기는어렵다. 오히려“누가, 어느민족이, 어느집단이더많이희생되었는가?”를놓고서로경쟁하고싸우는기억의민족주의를낳았다고보는편이옳을것이다. 마치희생자가더많을수록그민족주의가더정당성을부여받고, 상대편의희생을긍정하면자민족의희생은부정하는것처럼느끼는기억의제로섬게임이시작된것이다.
21세기민족주의의키워드는‘희생자’
21세기민족주의의코드가‘영웅’에서‘희생자’로옮아가는세계적인이추세를나는‘희생자의식민족주의’라고명명한바있다. 동유럽최고의일간지이자세계의어느유수한일간지와견주어도결코뒤지지않는폴란드신문가제타뷔보르차의기자이자창간공신인안나비콘트가쓴이책은바로폴란드의‘희생자의식민족주의’를정조준하고있다. 비콘트는‘역사적저널리즘’의관점에서폴란드출신미국의유대계역사가얀그로스의책‘이웃들’을둘러싼폴란드사회의첨예한논쟁을다루고있다. 2000년5월19일출간된이래한해동안단하루도폴란드언론에서이책을언급하지않고지나간날이없다고할정도로그로스의책은폴란드사회에편지풍파를일으켰다. ‘이웃들’의논지는비교적단순하다. 하지만참혹하다. 1941년7월10일나치점령하의폴란드동부변경지역예드바브네라는인구3,000명의작은시골마을에서약1,600명의유대인주민들이무자비하게학살당했는데, 학살자는흔히믿는것처럼나치가아니라폴란드인이웃들이었다는것이다. 폴란드인이웃들이유대인이웃들을학살한이야만의광경은차마옮기지못할정도로끔찍하다. 그참혹한광경을전한슈무엘바서쉬타인의증언을곧이곧대로믿어야할지고민할정도로그살육현장의야만과광기는상상을넘는다.
‘나치의희생자’아닌‘유대인의가해자
’비콘트의꼼꼼한기록과다양한인터뷰를통해이끔찍한야만의과거에대한폴란드인들의반응과논쟁을읽다보면, 분노로자꾸책장을덮게된다.폴란드민족이2차세계대전의가장큰희생자였다는방어막뒤에숨어예드바브네의학살을부정하거나의미를축소하고심지어는정당화하려는자기변호의논리들이끊임없이혐오감을불러일으킨다. 사안이갖는폭발성때문에취재를허가하지않다가, 예드바브네의학살자라우단스키형제의장형이자기가문의애국주의적전통을들먹이고또자신의가족은항상공공선을위해조국에봉사해왔다는편지를받고발끈한편집국장아담미흐니크가결국취재를허가한이야기부터가초현실적이다. 폴란드이웃들이유대인이웃을학살했다는주장은폴란드민족의명예를더럽히기위해악의적세계여론이날조한거짓말이며학살자는독일인이었다는예드바브네시장및그애국주의적일파의성명앞에서는망연자실할수밖에없다. 무의식속에있는죄의식이증오를낳았다는쿠론의설명에는고개를끄덕이기도한다. 바르샤바게토봉기의주역으로운좋게살아남아2차세계대전이후에는폴란드의양심으로도덕적명망을지켜온마렉에델만의증언앞에서는가슴이먹먹해진다.나치친위대의특수부대에포위되어어렵게싸움을이어가던봉기사흘째되던날,게토담너머에서그가본것은마치아무일도없다는듯회전목마를탄젊은여성들의바람에날리는빨갛고파란드레스였다. 누가이책을끝까지읽을수있겠느냐고묻는에델만의얼굴에서저자비콘트는물리적고통을읽었다고전한다.
희생자의얼굴로가장한가해자
예드바브네를부정하는폴란드인들은에델만과는다른의미에서고통을느꼈을것이다. 평범한폴란드인들이나치의희생자일뿐아니라공범자였다는사실앞에서그들은자신들의희생자의식민족주의를떠받쳐왔던도덕적정당성이무너지는것을지켜봐야만했다. 희생자의식민족주의가인류역사에서유일한원폭피해자임을주장하는일본이나소련군의성폭력과연합군의무차별폭격의피해자임을강조하는독일에서만위험한것은아니다. 개별적가해자들은나치점령기의동유럽에도있고일본제국의침략을당한아시아각국에도있다. 희생자라는기억은도덕적성찰의계기도되지만, 뻔뻔스러운자기정당화의논리가되기도한다. 가해자가희생자로둔갑하는이기억의전도현상은지난가을부터서울에있는권력의한복판에서도잘보인다.
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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