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보험과 관련한 공화당의 낭패는 오히려 제도 개선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비싸고 비효율적인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의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트럼프는 과거 미국의 의료보장제도에 대해 놀랄 만큼 지적이면서도 일관성 있는 기본 원칙과 투철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만약 그가 당시의 초심을 회복한다면 트럼프케어 법제화 실패를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 실질적인 손질을 가하는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진영은 의료보험제도가 자유경쟁 시장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충동적으로’ 가정한다.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재화 및 용역에 적용되는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일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는 1963년 의료보험 부분에서 자유시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는 바이어와 셀러 사이에 힘과 정보의 심각한 부조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세일즈맨이 특정 텔레비전 구입을 권한다면 바이어는 그가 추천한 것과 전혀 다른 제품을 선택하거나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매장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는 의사가 권하는 시술이나 약품을 간단히 거절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 전까지 의료보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지만 일단 아프게 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애로우는 지적했다.
정부주도의 헬스케어 시스템 버전을 채택한 세계굴지의 선진경제국가들은 암암리에 그의 주장에 동의했다.
우선 보수단체인 헤리티지 파운데이션이 산출한 경제자유지수가 미국보다 높은 16개국의 예를 살펴보자. 이들 중 싱가포르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단일보험제를 채택했다. 영국의 시스템을 본뜬 일종의 전국민 메디케어제다. 모든 소비자들의 가입을 의무화하는 민간보험인 오바마케어-플러스도 여기에 속한다. 반면 싱가포르는 이들과 다른 독특한 정부주도 접근법을 택했다.
세계에서 규제가 가장 느슨한 자유시장으로 꼽히는 홍콩은 영국스타일의 정부주도형 전국의료보험 시스템을 시행한다. 최고의 기업친화적 국가들 가운데 하나인 스위스는 미국과 같은 민간보험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이 제도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의무가입제를 곁들였다.
CNN의 요청에 따라 세계 각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나는 또 다른 자유시장 안전지대인 타이완의 예에 큰 충격을 받았다. 1995년까지만 해도 타이완은 전체 인구의 40%가 무보험자였고 국가 건강상태는 지극히 불량했다. 이에 따라 타이완 정부는 새로운 틀을 만들기에 앞서 세계 각국의 의료보험제를 면밀히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결국 타이완은 전국민 메디케어제를 선택했다. 복수의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국가단일보험제였다. 결과는 놀라왔다.
타이완의 의료보험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7%에 불과하지만 최상의 성과를 얻어냈다. (이에 비해 미국은 GDP의 18%를 헬스케어비용으로 지출한다.)
대만의 국가의보 모델을 고안하는데 기여한 경제학자 윌리엄 샤오는 미국의 제도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를 배웠다”고 대답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종종 자국의 의료보험제도가 다른 국가의 제도에 비해 훨씬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예로 의료대기시간이 꼽힌다.
그러나 코먼웰스펀드에 따르면 선진공업국들 가운데 미국의 진료 대기시간 서열은 중간정도다. 심지어 영국에 비해서도 뒤쳐진다.
더구나 세계의 유수한 의보 전문가들 가운데 한명인 프린스턴 대학의 우웨 라인하트는 진료 및 병원 체류시간 비교에서 미국은 선진국 평균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자유시장의 문제는 예방치료로는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반면 위기관리치료(crisis care)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인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 폐기를 선포하고 나섰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인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헬스케어는 그가 꾸준히 제기했던 이슈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에 발간된 저서 “우리의 자격에 값할 미국”(The America We Deserve)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주장한다.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 나는 분명 보수적이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의료비용으로 인해 망가진 여러 가정의 쓰라린 경험담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반드시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채택해야 한다. 이 제도를 택한 캐나다 국민은 미국인들에 비해 오래 살 뿐 아니라 훨씬 건강하다. 미국에 비해 의료소송 건수와 병으로 인한 노동손실이 적으며 기업들이 종업원들의 의료비로 지급하는 비용도 낮다. 우리는 다른 개별국가들이 시행 중인 단일부담플랜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일생 중 상당기간에 걸쳐 트럼프는 이 문제에 관해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 지금 그는 이익집단과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아데올로기 앞에 무너졌다.
이제 트럼프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민주당에 손을 내밀고 미국의 헬스케어 위기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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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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