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들의 사이는 가까운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서로를 못 견뎌 했다. 한쪽은 상대를 ‘막말의 선동가’로 경멸하며 혐오감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고, 한쪽은 상대를 ‘부패하고 무능한 기득권 집단’으로 싸잡아 공격했다. 이랬던 그들, 도널드 트럼프와 공화당 의회는 연방 상하원에 백악관까지 차지한 ‘공화당 천하’를 맞으면서 새로운 리더 트럼프 대통령의 깃발 아래 모여드는 듯 보였다.
공화당이 압승을 거둔 2016년 대선 며칠 후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 “단합된 새 공화당 정부의 새벽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를 미국민의 진정한 발전으로 집중 변환시키는 정부가 될 것입니다”
당시에도 왜 트럼프의 ‘어젠다’가 아닌 ‘승리’로 표현했을까, 트럼프의 모든 정책을 성사시키지는 않겠다는 뜻인가 등 추측을 낳았던 그들의 허약한 유대는 지난주 트럼프케어 좌초라는 굴욕적 실패에 다시 한 번 흔들리고 있다.
지난 7년간 공화당의 좌우명이었던 ‘오바마케어 폐지와 대체’의 해답으로 제시된 트럼프케어의 무산은 단순히 한 개 법안의 좌절이 아니다. 공화당 통치의 신뢰도가 함께 무너졌다는 상징적 의미라는 지적도 나왔고, 트럼프케어를 통과시켜 앞으로 계속될 예산, 세제개혁 등 일련의 표결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었어야 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지난 선거에서 최대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케어는 ‘무늬만 오바바케어 폐지’라며 반대한 강경보수파 등 공화당 내부의 반란으로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표결도 못한 채 철회되었다. 새 대통령의 리더십은 상처를 입었고 지난 10년 사사건건 반대하는 ‘아니요 당’에 안주해온 공화당은 통치할 “준비된 정당 맞는가”라는 의구심을 사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케어 자체가 나쁜 법안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부자들에게 감세혜택을 주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2,400만명을 무보험자로 전락시키는 이 법안 좌절의 핵심요인은 민주당만이 아니라 공화당도 외면한 여론의 반대다. 법안지지 서한에 서명한 공화당 주지사는 전체 33명 중 8명뿐이었다. 표밭의 지지가 높았다면 당내 반대도 그처럼 강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화당 정책 수립의 대변인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라이언 의장이 오래 공들였을 텐데 왜 참패한 것일까. 대체안 마련보다는 폐지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기본 건강을 오바마케어에 의지하게 된 민생을 이해하지도, 따뜻한 시선으로 살피지도 않은 채 만든 듯한 여기저기 구멍 뚫린 대체안을 서둘러 통과시키려 했으니 좌절당한 것이 당연하다.
허상으로 드러난 것은 ‘정책의 귀재’라는 라이언에 대한 명성만이 아니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의 매직도 크레딧을 잃고 있다. 새 대통령으로 첫 대 의회 입법 협상에 나선 것인데 그의 위협도, 회유도 공화당 의원들을 움직이는데 충분치 못했던 것이다.
의회가 대통령의 입법 야망에 제동을 거는 일은 드물지 않다. 빌 클린턴의 헬스케어법안, 조지 W. 부시의 소셜시큐리티 개혁법안, 버락 오바마의 기후변화 법안이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치는 모멘텀’이다. 성공이 성공을 낳고, 실패는 변절과 불신을 초래해 또 다른 실패를 낳는다. 오바마케어 폐지 좌절 직후 트럼프와 라이언이 다음 어젠다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강조한 것도 앞으로의 실패를 경계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별로 장밋빛이 아니다.
어렵고 복잡한 과제들이 당장 눈앞에 줄줄이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민주·공화 양당 모두에서 강하게 반발할 일대 전투를 예고한다.
가장 임박한 전투는 4월말 전에 해야 할 잠정예산안 통과다. 트럼프의 국경장벽 건설기금과 낙태지원 기금 중단이 포함되어 있어 민주당이 필사적 반대를 천명하고 있다. 논란 많은 이 항목들을 빼버리지 않으면 “공화당 의회가 공화당 행정부를 셧다운 시키는 사태”가 야기된다.
그렇게 봄을 보낸 후 여름에는 부채 상한선 올리는 법안을 마무리해야 하며 가을엔 다시 2018년 잠정예산안 통과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한다.
공화당 의회는 지루하고 난해한 재정법안들과 씨름하는 동안에도 입법전략에 미숙하고 법안 내용에 별 관심 없는 대통령과 부딪치며 반감이 늘어날 것이고, 의회의 무능한 지도부와 조각난 분파들이 못마땅한 대통령은 워싱턴 정치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갈수록 절감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케어 위기에서 탈출하며 트럼프는 구조를 요청하듯 “세제개혁!”을 외쳤지만 대다수 의원들이 ‘재정 매파’인 공화당 의회와 ‘부채의 제왕’임을 자처했던 기업가 출신으로 대규모 감세안을 공약한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지…상상하기 힘들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의회에 할 수 있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설득임을 깨닫고 공화당과 진정한 한 팀으로 일하려 한다면, ‘오바마 반대’로 단합했던 공화당이 ‘충실한 공화당’이 아니라고 경원해온 트럼프에게 마음을 연다면, 공화당 정부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는 조용히 기대치를 낮추기 시작했다. 공화당 인사의 한마디에서 의회의 분위기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 “닐 고서치 대법관 지명자가 인준 받고, 핵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우린 ‘승리’로 간주할 것입니다”…이렇게 그들의 사이는 아직 여전히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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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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