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고서치는 지난해 초여름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가 처음 공개한 연방 대법관 후보 11명의 명단에는 들어 있지도 않았다. 보수학회들의 추천으로 10명이 더해진 두 번째 명단에 오른 후에도 그의 이름은 하위권에 속해 있었다. 콜로라도 주의 연방항소법원 판사 고서치가 금년 1월초 7명 최종 명단에 오른 것은 대형 로펌의 회의실, 음침한 지하층의 선거사무실, 트럼프 타워의 펜트하우스 등에서 수차례 장시간에 걸친 ‘면접’을 치른 후였다.
컬럼비아대학과 하버드법대를 졸업한 아이비리그 출신에 옥스퍼드대학의 박사학위까지 그의 화려한 학력은 ‘반 기득권층’을 강조한 트럼프의 인선에선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심층 인터뷰들을 거치면서 그는 “변절 안할 보수이념과 정치적 약점 없는 경력에 최고의 법관”을 주문한 트럼프의 조건에 가장 적합한 후보로 떠올랐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환경보호청장을 역임한 활달한 어머니의 적극성과 온화한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정중한 품위를 물려받은 그는 “명석하고 겸손한데다 키 크고 잘 생기기까지 해…법조계의 록 스타”로도 불린다. 그가 워싱턴 인사이더들의 예상을 깨고 최종 후보로 지명된 것은 세련된 지성과 함께 다른 후보들의 추천 때문이었다.
면접관들이 모든 후보들에게 따로 물었다 : “만약 당신이 아니라면 누굴 추천할 것인가?” 대부분이 존경과 호감을 표하면서 고서치를 꼽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법조문을 중시하는 자신의 원전주의 소신과 보수철학에 충실하면서도 반대의견을 존중하는 그의 정중함에 대한 좋은 평판은 이번 주 시작된 연방상원 법사위의 인준 청문회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오늘로 나흘째인 청문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불꽃 튀는 공방으로 맞서는 팽팽한 힘겨루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현재 보수와 진보가 4대4로 갈라진 대법원 이념지형의 저울추를 한쪽으로 기울게 할 결정적 인사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했던 메릭 갈랜드 판사를 공화당이 “새 대통령 소관”이라며 청문회도 열지 않은 채 무산시켜버린 ‘지은 죄’가 있어서다. 당연히 민주당은 고서치에 대한 ‘보복성’ 전방위 공격을 별러 왔다.
그런데, 민주당의 공격이 영 힘을 못 쓰고 있다. 고서치의 변호사 10년, 판사 10년의 경력을 샅샅이 파헤치며 송곳 질문을 쏟아냈지만 거의 흠집을 내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의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서치의 방어가 뛰어나서다.
이틀째 11시간을 넘기며 계속되는 질문에 시달렸지만 고서치는 흔들림이 없었다. 침착하고 겸손한 자세로 공격을 막아내고, 논란이슈들을 피해갔으며, 완곡한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도 확실히 했다.
트럼프에 맞설 수 있는 독립성을 추궁하는 민주당에게 그는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으며 “법이 필요로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낙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인터뷰 때 낙태합법화 판결의 무효화를 요구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엔 “난 문을 열고 나왔을 것”이라고 대법원 판례에 대한 법관으로서의 소신을 분명히 했다.
수없이 펀치를 날렸지만 고서치를 ‘사법부 주류에서 벗어난’ 위협적인 이념주의자로 채색하는데 실패한 민주당이 그나마 효과를 본 것(생채기 정도이지만)은 ‘얼어 죽을 뻔한 트럭운전사’ 케이스였다.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브레이크가 얼어 움직이지 못하는 화물 트레일러를 떼어 그 자리에 남겨둔 채 트럭을 타고 인근 주유소로 가 몸을 녹였던 운전사가 그 때문에 트럭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제기한 소송으로 운전사는 항소심에서 2대1로 승소판결을 거두었다. 당시 회사의 해고가 합법이라고 반대소견을 낸 1명의 판사가 바로 고서치였다.
민주당은 그가 강자에 편에 서는 친기업적이고 비인도적이며 몰인정한데다 상식과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맹공격했으나 그는 “회사의 현명함이나 공정함이 아닌, 위법여부를 가리는 판결”이었다고 해명했다. 법조문에 “불안전한 차량 운전을 거부했다면 해고당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운전을 했으므로 해고가 위법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폭설에 발이 묶여본 경험이 있는 자신도 이 법을 좋아하지 않지만 “법을 지키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강조한 그는 그동안 자신이 내린 2,700여건의 판결 중엔 약자의 편에 섰던 판결들도 많았다고 강변했다. 그는 트럼프 및 그 측근들과는 다르게 ‘불법이민’이 아닌 ‘서류미비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고서치의 기대 이상 선방에 반색한 공화당이 더욱 단합해 전폭지지를 보낼수록 민주당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보수지역 자당의원들이 고서치에 호감을 감추지 않고 지지를 시사하고 있어 민주당으로서는 필러버스터로 막기도 장담하기 힘든데 여차하면 공화당은 단순 과반수로 통과시킬 수 있는 핵옵션을 선택할 기세다.
이변이 없는 한 고서치의 인준은 무난할 것이라는 의미다. 빠르면 3주 안에 제113대 연방대법관이 탄생한다. 대법원의 새로운 보수시대를 열어갈 불과 49세의 젊은 기수다.
그를 지명한 대통령과 인준한 의원들이 대부분 공직에서 사라져 버릴 앞으로 수십년 동안,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와 영향을 줄 새 인물의 역사적 등장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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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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