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 '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서양 근대 미술에서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빛을 강조하기 위해 주로 야외에서 작업하였다. 그들은 빛의 움직임에 따른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묘사하고 주로 감정과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를 비롯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등이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들이다.
1874년 프랑스 화가 협회의 파리 작품전에는 급진적 화법을 사용한 그림들이 전시되었다. 신문 기자 루이 르르와(Louis Leroy)는 당시 작품전에 참여한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공격하였는데, 특히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는 전통 화법을 완전히 무시한 그림이라며 비난하였다. 하지만 파리 협회 화가들은 스스로를 ‘인상주의자’라 칭하며 기존의 미술 사조와 맞섰다.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1889년쯤에야 인상주의 화풍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인상주의는 음악분야에까지 퍼져나갔다.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
인상주의 음악은 미술에서의 인상주의처럼 분위기를 중시하였는데, 이는 후기 낭만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인상주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을 꼽을 수 있다. 드뷔시는 음악적 모티브, 화성, 음의 진행을 통해 독창적인 색채를 표현하였다. 두 조성을 동시에 사용한 복합조와 7도, 9도와 같은 불협화음의 사용, 불규칙적인 박자, 다양하고 복잡한 리듬, 자유로운 형식 등이 특징이다. 하지만 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상주의 음악도 초반에는 과장된 음색, 구조성 결여, 모호한 조성 등을 이유로 혹평을 받았다.
드뷔시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청년기를 보냈지만, 1884년 칸타타 〈탕아 L'Enfant prodigue〉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며 로마의 빌라 메디치로 유학을 가게 된다. 그는 로마 메디치 궁에서 3년동안 머물며 작곡에 몰두하였는데 이때 관현악곡 〈봄 Le Printemps〉을 작곡하였다. 〈봄〉은 초기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그림 ‘봄’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으로, 봄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물의 고통스러운 창조기와 마침내 새로운 생명으로 개화하는 폭발적인 기쁨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럽의 예술가들처럼 드뷔시도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는 베트남, 캄보디아, 자바 음악들을 통해 동양 특유 정서를 접했는데, 특히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악인 ‘가믈란(Javanese Gamelan)’에 매력을 느꼈다. ‘가믈(Gamel)’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한 가믈란은 ‘두드리다’라는 의미로 망치로 쳐서 소리 내는 타악기 음악을 모두 포함한다. 가믈란은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섬의 ‘슬렌드로(5음계)’와 발리 섬의 ‘페로그(7음계)’의 두 가지 편성을 가진다. 드뷔시는 한 옥타브를 균등한 음정들로 나눈 5음계가 사용된 자바 섬의 음악을 경험하여 이와 유사한 온음음계(whole tone scale)를 그의 음악에 적용했다. 라벨 역시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가믈란의 이국적 음계를 듣게 된다. 가믈란 음악은 드뷔시 뿐만 아니라 라벨의 작품에 스페인의 기운을 불어 넣어준 샤브리에(Emmanuel Chabrier, 1841~1894)와 전통에서 벗어난 화성법을 개척한 사티(Eric Satie, 1866~1925)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 가믈란의 영향으로 탄생한 음악이 바로 드뷔시의 피아노곡 <판화 Estampes>이다. 드뷔시는 많은 실내악곡, 관현악곡을 만들어냈지만 피아노곡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1903년에 작곡된 <판화>는 ‘탑(Pagodes)’, ‘그라나다의 황혼(La soirée dans Grenade)’, ‘비 내리는 정원(Jardins sous la pluie)’의 3곡으로 구성된 드뷔시 초기 작품이다. 사실 드뷔시는 자바섬을 직접 가보지 않았다. 그저 그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곳이었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국적인 경치, 건축 등을 표현하려 했던 듯 하다.
또한 드뷔시의 초기양식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은 1890년에 작곡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이다. 이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달빛(Clair de lune)’은 은은한 달빛이 물가 위를 비치는 듯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고, 여기에는 드뷔시 특유의 성숙미와 부드럽고 섬세한 색채감이 잘 나타나있다. 또한 각 세곡으로 이루어진 〈영상 Images〉 1, 2권은 5음 음계, 온음 음계를 사용하여 신비하고도 이국적인 음향을 표현하였다.
드뷔시의 <전주곡 Preludes>도 그의 대표적 피아노 작품으로 꼽힌다. 전주곡 1, 2권은 구조와 형식에 대한 실험적인 작품으로 피아니스틱한 효과와 상징주의적 색채감을 나타내었다. 이 작품은 바하(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의 전주곡처럼 총 24개로 되어있으며 각 제목은 미술, 신화, 자연 등을 다룬다.
*오늘의 추천 작품 감상 목록
해 뜰 무렵 드뷔시의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마음이 포근해지며 상쾌하고 차분한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관현악곡 〈봄 Le Printemps〉
-피아노곡 <판화 Estampes>
-피아노곡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 중 ‘달빛(Clair de lune)’
-〈목신의 오후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시인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시 ‘목신의 오후’를 음악으로 나타낸 것으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장면들이 불규칙한 리듬, 모호한 화성과 박자 등으로 표현된다.
-<전주곡 Preludes> 1권 제 8곡 ‘아마빛 머리의 소녀(La fille aux cheveux de lin)’
‘매우 조용하고 다정한 표정이 풍부하게’라는 지시어가 붙어있는, 금발 소녀의 모습이 그려지는 감미로운 곡이다.
-<전주곡 Preludes> 1권 제 10곡 ‘가라앉은 사원(La Cathédrale engloutie)’
안개로 가득한 바다에서 종소리가 울리는듯한 느낌의 곡으로 5도 화음의 연속으로 시작한다. 피아노(p)로 시작한 이 곡 중간의 포르테(f) 부분에서는 종소리가 선명해지는 것이 표현된다.
-<전주곡 Preludes> 2권 제 12곡 ‘불꽃(Feux d'artifice)’
밤하늘의 불꽃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채를 잘 나타내었다. 글리산도를 통한 피아노(p)로의 셈여림 변화는 불꽃이 꺼지는 모습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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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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