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집권 2기 동안 미국 경제는 1,030만개의 일자리를 추가했다. 월평균 21만 4,0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공식 실업률은 5% 아래로 떨어졌고 지난 연말에 나온 주요 지표들은 미국 경제가 완전고용에 근접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일자리에 관한 희소식이 사실과 전혀 다르며 사실상 미국은 대량실업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후 첫 번째 월간 고용보고서는 앞서의 추세가 지속되면서 지난 1개월간 총 23만 5,000개의 일자리가 추가됐음을 보여주었다.
현 정부는 재빨리 공을 주장하고 나섰다. 트럼프의 수석공보관은 과거의 일자리 숫자는 가짜였지만 이번의 수치는 진짜라고 선언했다.
기자들은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공보수석의 발언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에 어이없어 했다.
현재 미국은 객관적 사실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대통령과 정당이 지배한다. 대신 그들은 국민 모두가 그들이 말하는 바를 무조건 현실로 받아들이기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럼프 취임식에 역대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거짓 주장을 믿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수 백만 명이 상대방 후보에게 불법투표를 했다는 헛소리를 그대로 받아주어야 하고 백악관의 전임자가 자신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까지 사실로 간주해야 한다.
이는 한 사람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는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의 이 같은 태도가 수백만 명에게 집단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다면 의료법개혁을 둘러싼 상황전개를 살펴보라.
오바마케어는 미국인 무보험자들의 숫자를 크게 낮추었다. 물론 감소폭이 더 커야 앞으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든지 좀 더 개선된 법을 제정해야 했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바마케어가 일군 현실적 성과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의료개혁법의 핵심 조항을 극적으로 약화시킬 트럼프케어의 결과를 우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원들은 오바마케어의 성과를 부인한다. 헤리티지재단의 회장은 의료보험개혁법의 긍정적 효과를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의료보험개혁법이 시행된 후 켄터키 주 무보험자의 비율이 16.6%에서 7%로 떨어졌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주말 루이스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오바마케어가 켄터키 주민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반면 트럼프게어가 가져 올 충격에 대해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경우 의회는 주요 입법을 추진할 때 세수와 지출에 미치는 영향 및 법안의 핵심목표 달성가능성에 대한 의회예산국(CBO)의 평가를 기다린다.
의회예산국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예측기관에 비해 평판이 좋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CBO가 당파성을 피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고 이에 따라 정치적 동기가 부여된 희망사항을 가려내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화당원들은 CBO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은 채 몇몇 핵심 위원회에서 트럼프케어를 말 그대로 야밤에 날치기 통과시켰으며 이 법안이 법제화될 경우 수백만 명이 의료보험 커버리지를 상실하리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을 것이 확실한 의회예산국을 향해 맹렬한 선제 비난을 퍼부었다.
CBO가 오바마케어에 관해 일부 잘못 평가한 부분이 분명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법안의 효과를 꽤나 정확히 예상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개혁법이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엉터리 예측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이 법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정확한 전망을 내렸다.
앞으로 CBO의 평가에 가해질 그 어떤 비난도 정부보조금 대폭 삭감과 수백만 가입자들의 자체 부담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트럼프케어로 인해 “전보다 재정 상황이 악화 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는 탐 프라이스 보건복지부장관의 터무니없는 주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의 의료보험 정책이 옳으냐는 분석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적법성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트럼프 사단의 횡포다.
다시 말해 CBO는 왜곡보도 때문이 아니라 감히 트럼프에게 도전했다는 이유 때문에 ‘공공의 적’으로 선포된 언론매체들과 동일한 위치에 서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민중의 적’은 역사적으로 스탈린을 비롯한 독재자들과 관련된 어구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아직 독재자가 아니지만 분명히 독재자의 본능을 갖고 있다. 게다가 공화당원들 가운데 상당수, 혹은 거의 전부는 괴상하기 그지없는 음모론까지 받아들이는 등 기꺼이 트럼프를 추종한다. 예를 들어 공화당원들의 절대 다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통화내용을 도청했다는 트럼프의 넋 나간 주장을 믿는다.
그러니 의회예산국에 대한 공화당의 공격을 일종의 기술적 다툼으로 묵살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CBO를 겨냥한 트럼프 일당의 공격은 과연 무식이 힘인지, 백악관의 입주자가 진실의 유일한 결정권자인지 여부를 판가름할 훨씬 큰 싸움의 한 부분이다.
■폴 크루그먼 약력
-예일대 경제학부 졸업, MIT 경제학 박사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현 뉴욕시립대 경제학 교수
-1999년~현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폴 크루그먼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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