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공화당의 ‘트럼프케어’가 출범 한 주 만에 덜컥 발목을 잡혔다. “2,400만명 무보험자 양산”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아낸 의회예산국(CBO) 보고서 ‘충격’의 파편에 맞은 것이다.
공화당 주도 하원은 지난주 6일 밤 ‘아메리칸 헬스케어법’이라고 명명한 트럼프케어를 공개했고 불과 이틀만인 9일 에너지·통상위와 세입위 등 2개 상임위원회에서 잇달아 통과시켰다. 예정대로라면 어제 예산위 통과와 다음 주 본회의 표결을 거쳐 상원으로 보내고 곧바로 상원 본회의 표결로 의회 통과를 마무리한 후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동부폭설로 약간의 차질이 생겨 예산위 표결이 오늘로 연기되었을 뿐 ‘공격적’인 밀어붙이기 일정은 고수할 태세다. 공화당이 폐지시키고 트럼프케어로 대체하려는 오바마케어의 길고 험했던 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입법과정이 될 것이다.
오바마 전대통령과 민주당이 ‘감당 가능한 의료법(ACA)’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키는 데는 1년 이상이 걸렸다. 취임 첫해의 겨울에서 봄과 여름에 걸쳐 수많은 공청회와 비공개 타협이 끊임없이 진행되었으며 하원의 첫 상임위 표결은 CBO의 분석이 나온 후인 7월에야 시행되었다. 한 여름 일주일 넘게 법안 손질에 몰두한 상원 재정위는 79차례 표결을 통해 130여개 수정안을 처리했고 본회의 표결이 지연되면서 상원의원들은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귀향도 못했었다.
헬스케어라는 과제 자체가 미 경제의 18%를 차지하는 방대하고 복잡한 주제인데다 국민 건강이라는 주요이슈를 ‘초당적 합의’로 타결하고 싶었던 새 대통령의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바마케어는 민주당만의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민주당은 오랜 시간과 긴 절차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몇 달을 끄는 동안 여론의 반대가 증폭되었고 여름 휴회 중 의원들의 선거구 타운홀 미팅에선 티파티의 분노가 폭발했다. 산발적 반대가 조직화되는 충분한 시간을 허용한 것이다.
공화당의 트럼프케어 ‘속전속결’은 오바마케어가 빠졌던 함정을 피해가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4월초부터 시작되는 부활절 휴회 전에 트럼프케어 통과에 성공한다면 8년 전 못지않게 격렬하게 폭발할 수 있는 타운홀의 트럼프케어 반대가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할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의 의무적 보험가입규정 폐지와 세액공제 혜택에 의한 가입 유도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케어는 공개 즉시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 의료업계와 고령자협회, 소비자단체들과 보수운동가들까지, 제각기의 입장에서 트럼프케어에 혹평을 가하고 있다. 미상공회의소와 공화당 지도부외엔 열성적 지지자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4월 통과라는 목표달성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눈앞의 걸림돌은 따로 있다. 당내 반발이다. 백악관과 당 지도부가 강조하는 ‘공화당 천하’ 모멘텀에도 불구하고 내분은 여전히 깊어 공화당의 ‘숙원’ 과제인 트럼프케어 지지에도 별 단합의 기미가 없다. 강경보수파는 오바마케어 완전 폐지에 못 미친다고 불평하며 반대를 천명하고, 중도파는 지역구 오바마케어 수혜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찬성을 주저한다.
이 와중에 CBO의 암울한 분석이라는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믿기 힘든 형편없는 추정”으로 깎아내리기 바쁜 분석의 내용은 통계숫자에 근거한 객관적 전망으로 트럼프케어가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과 노년층의 기본 안전망을 약화시키는 ‘잔인한 법안’임을 보여주고 있다 - 현재 유보험자 14명 중 한명 꼴이 향후 10년에 걸쳐 무보험자로 전락하는데 같은 기간 정부적자는 3,370억 달러 줄어들게 된다. 부유층은 엄청난 감세 혜택을 누리게 되고 빈곤층에 대한 메디케이드 보조는 대폭 삭감된다. 젊고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에겐 혜택이 늘어나고, 나이 들고 아프고 가난한 사람에겐 부담이 늘어난다…
뉴욕타임스가 “헬스케어를 감세와 바꾸다”란 제목으로 비판한 트럼프케어가 초래할 결과의 두려운 측면들이 부각되면서 중도파 의원들은 더 한층 뒷걸음질 치는데 강경파는 아직 반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통과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일치단결해 반대표를 던진다 해도 하원에선 공화당 반대가 21명을 넘지 않으면, 상원에선 2명을 넘지 않으면 트럼프케어는 미국의 새로운 의료보험법으로 확정된다.
회유와 위협,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백악관이 반대의원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케어의 조속한 통과여부는 새 대통령 트럼프의 의회영향력에 대한 첫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케어의 기수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강조하는 ‘적자해소’도 물론 중요하다. ‘오바마케어 폐지’가 공화당의 7년 숙원과제였다는 사실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간신히 보험을 갖게 된 2,400만명이 직면할 무보험자 전락이다.
“건강을 지켜주는 의료보험은 직장인의 혜택인가, 전 국민의 기본권인가” - 대부분의 선진국이 오래전 끝낸 이 논쟁을 미국은 다시 시작하려는 것일까. 수백만명을 무보험의 늪에서 구해내고도 폐지의 위기에 처한 오바마케어가 다음주 3월23일로 입법 7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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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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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케어가 통과되면 공화당의원의 무덤이 될것이다. 제일 실망스럼 사람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다. 한때 대통령후보로 보았으니 그에게 용기가 없다. 그의 정치생명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