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그 자체를 한사코 거절했다. 탄핵과 관련해 수 십 차례의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의 대면조사도 거부했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막았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2017년 3월10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다.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다. 진실을 덮기 위해 꼼수로만 일관했다. 그 박대통령에게 헌법재판소는 한국사상 첫 탄핵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겨주었다는 지적이다.
뭐랄까. 불통에, 독선, 무능. 그리고 교만. 거기에다가 무속적 그림자까지 어른거린다. 그렇게 쌓아올려진 바벨탑이라고 할까. 그 밀폐된 탑 안에 스스로를 가둔 권력은 심한 민심 난독(難讀)증세를 보여 왔다.
그 난독 증세는 체질화 됐다. 지지율이 4%로 떨어졌다. 75%가 넘는 국민이 탄핵을 외치고 있었다. 그것도 연 4개월에 넘도록. 그런데도 딴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일종의 확신에 차 있었다. 탄핵은 있을 수 없고. 태극기 물결은 여왕의 복위를 불러올 것이라고.
그 불통의 바벨탑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1500여만 개의 촛불이 타오르면서. 그 엄청난 피플 파워의 분출을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그 징표로 해석했다.
뉴욕타임스뿐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신문은 물론 CNN, BBC 등 주요 방송들도 한국 역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파면사태를 주요 소식으로 다루었다. 그러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
우산혁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철퇴로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다. 그 홍콩의 젊은 세대에게 한국의 촛불 시위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보도다.
평화로운 촛불시위를 통한 명예혁명. 이를 단순히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의 성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세계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반(反)기득권, 내지 반 엘리트 정서다.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에서의 평화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이 시민운동에 영감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거다.
대통령의 날, 워싱턴D.C. 등 미국 곳곳에서 벌어진 반(反)트럼프 시위에서도 한국의 축제스타일 촛불시위는 일종의 롤 모델이 됐다.
이와 함께 외신들이 특히 주목한 부문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구속된 사실이다. 삼성그룹 총수 구속과 함께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 이를 한 시대의 종언, 다시 말해 정경유착으로 특징 지워진 박정희 신드롬에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주요 외신들의 시각이 그렇다. 촛불시위, 그리고 대통령탄핵을 민주주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국무부의 2016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국정농단관련 사건에 대한 일련의 수사와 탄핵심판과정을 부패와 인권문제로 접근해 평가했다. 엄정해야할 국정을 특정인에게만 유리하게 재단했다. 그 결과 다수의 인권이 유린됐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국정농단사태는 부패 대 반부패 문제라는 얘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그렇다. 대통령의 위헌, 위법행위는 헌법수호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에게 엄정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그 사실을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사로 명시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이념과 계급의 문제도 아닌 정치적 폐습의 청산이 본래 정신이라는 보충의견까지 첨부했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 국론이 분열됐다.’ 탄핵정국을 맞아 일부에서 제기되어온 주장이다. 그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새삼 지적한 것이다. 각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은 인용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75% 이하가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탄핵반대 의견은 20%를 넘은 적이 없다.
탄핵문제는 어리석고 무능한 대통령이 불법을 저지른 헌법유린사건이다. 이것이 절대 다수 한국국민의 변치 않는 생각이다. 그런데 특정 세력이 문제의 프레임을 보수 대 진보, 좌와 우의 싸움인 양 교묘히 바꿔놓았다.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면서.
그 책략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려들었다. 그래서인가. 일부 언론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동일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사건으로 보도했다.
소수의 의견이라고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의 불만성의 움직임을 절대 다수의 정치운동과 동격으로 취급한다. 마치 여론이 두 동강이나 난 듯이.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탄핵 불복움직임을 조장해 하는 말이다.
“내게는 아직도 배가 열두 척이 있습니다.” 관제데모 지시 의혹을 받았던 청와대 행정관이란 사람이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섬뜩하다. 탄핵을 지지한 80% 가까운 절대 다수 한국 국민을 마치 피로써 섬멸해야 할 왜적(倭敵)과 같이 보고 있다는 얘기로 들려서다.
석 달 이상 끌어온 탄핵정국이라는 소용돌이는 이제 끝났다. 분열을 멈출 때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복할 태세다. 어떻게든 한국 사회를 두 동강내겠다는 거다. 그 세력은 탄핵을 불러온 국정농단 부역세력보다도 더 용서받지 못할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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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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