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기(氣)가 있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氣’란 기운 부수에 쌀미(米)가 가미된 글자로서, 밥지을 때 나는 기운을 말하기도 한다. 예술가이신 어느 지인(知人)은 나이 들 수록 氣가 약해져 예술활동이 힘들다며 하소연하신 적이 있었는데 밥을 짓든 예술을 하든 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을 것이다. 氣란 물론 어떤 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태, 즉 젊음을 말하기도 할 것이다.
기가 빠졌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기운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늙은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 수록 세상이 지겨워지고 삶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삶에 대한 호기심, 새로움에 대한 기가 당차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삶에서 기의 재충전을 위해 명산을 유람한다든지 혹은 스포츠, 모험을 찾아 나서곤 하지만 영원히 늙지 않는 氣란 아마도 영감이 충만한 어떤 감동의 세계를 느끼고 또 그 감동을 표현하는 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곡가 스메타나는 ‘예술적인 사상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사람 만이 완전한 인간이다’고 말한 바 있었다. 시냇물처럼 자연스럽게 대양으로 흘러가는 대자연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우리는 가끔 급류를 거슬러, 먼 바다로부터 산란을 위해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들에게도 무한한 감동을 느끼곤한다. 생명력…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요구하는 평화로움, 행복의 추구와는 반대로 죽음을 통해서조차 무언가를 남기고 또 탄생시키기를 염원하는 氣… 그 영원한 생성의 의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정적인 평화… 내면의 성찰과 명상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낳게 한 대자연과 어버이의 땅… 삶에 대한 감사와 경이를 노래하고픈 무한한 의지와 그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투지에서도 깊은 감동을 느끼곤한다. 스메타나의 음악… 특히 체코 출신의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하는 ‘나의 조국’에서 전해오는 울림은 보다 원초적인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
예전에 쿠벨릭에 얽힌 일화 ‘프라하의 봄’을 읽고 그의 음반에서 울려오는 감동이 결코 우연만이 아님을 알게되었는데, 쿠벨릭은 조국 체코가 독일의 압제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독립을 이룬 것을 기념, 1946년 5월12일 스메타나의 탄생일에 기해 ‘프라하의 봄’이라는 음악제를 창시하게 된다. 그러나 2년 뒤 사회주의 혁명으로 체코는 공산화되고 말고, 그후 1968년에 일어난 그 유명한 체코의 민주화 운동이 일명‘프라하의 봄’이었다. 이 민주화 운동은 소련이 급파한 20만 병력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고 말지만 1989년 하벨의 주도로 체코는 민주국가로 거듭나게 되는데, 망명생활을 하던 쿠벨릭이 1990년 ‘프라하의 봄’에서 연주한 곡이 바로 ‘나의 조국’이었다. 이때 대통령이 된 하벨이 눈물을 흘리는 영상이 스메타나의 음악과 함께 전세계를 감동시켰는데, 이처럼 울림의 氣… 음악은 대자연처럼 살아 있기도 하다.
스메타나의 음악은 역경과 감동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유년의 동경과 같은 순수한 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보다는 내면의 극기… 자연과 같은 진실함을 전해 주기도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내면적인 예술성에서 찾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체코의 국민음악파 스메타나(1824-1884)는 절정기였던 1874년(그의 나이 50세)에 뇌경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귀까지 완전히 멀고 말았다.
이러한 육체적인 위기는 스메타나로 하여금 사랑하는 조국산천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때 탄생한 곡이 바로‘나의 조국’, 현악 사중주 ‘나의 생애’ 등이었다. 신병으로 체코 국립극장 지휘자 자리를 사임한 스메타나는 딸 조피를 찾아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60km쯤 떨어진 야브케니체라는 마을에서 은둔생활을 시작, 숲 속의 작은 단층집에서 6표제로 된 교향시를 남기게 되는데 체코의 전원과 역사가 어울린 이 민족주의 대 서사시는 ‘몰다우’ 등과 함께 전세계 음악인을 감동으로 젖게 한다. 그리고 마치 이 작품을 위해 탄생하기나 한 것처럼, 스메타나는 고단한 산란을 마친 뒤 1884년 정신착란으로 그해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5월이 되면 또다시 피어나는 ‘프라하의 봄’ … 그 영원한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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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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