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우리 앞에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지만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면서 계속 살아간다. 그럴 수 있게 해주는 힘은 ‘해석’에서 나온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나 견디기 힘든 고난이 닥친다 해도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넘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털고 일어서게 되는 것은 해석이 지닌 힘 덕분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인간의 존엄을 짓밟힌 채 극한의 고통을 겪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 박사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이 아니라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해석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인간의 원초적 동력”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를 뜻하는 ‘로고테라피’를 창안했다.
박근혜 게이트 특검이 9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하고 6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예상대로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과 부패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이번 사태를 접하며 대다수 국민들이 느낀 감정은 충격과 분노, 황당함, 그리고 슬픔이었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을 집단 멘붕에 빠뜨렸다. 박근혜는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자기 주머닛돈 쓰듯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의식수준은 딱 아버지 시절에 멈춰 있었다. 이걸 모른 채 그에게 표를 던졌던 국민들의 자괴감과 배신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박근혜 게이트는 헌정사에 치욕스러운 기록으로 남겠지만 박근혜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회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박근혜 게이트의 긍정적 측면을 보려는 노력들은 다양한 해석을 통해 정치적 참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집단적 로고테라피’라 할 수 있다.
‘올바른 문화예술인 1만 명 분류’ ‘양변기 산업 활성화’ 같은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의견들까지 쏟아졌지만 박근혜의 등장과 몰락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의 반민주적 행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역설에 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이번처럼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이 됐던 적은 없었으며 광장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주권의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박근혜는 국민들에게 생생한 민주주의 교육을 제공한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아니라 문재인이 당선됐다고 해보자. 문재인은 보수신문과 종편에 의해 연일 난타당하고 난도질당했을 것이 뻔하다. 그들의 체질상 보수로부터 정권을 빼앗아간 문재인은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그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트집 잡으며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마치 노무현 시절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었듯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보수의 대안으로 박근혜가 다시 한 번 부상했을 가능성 크다. 박근혜는 대선에서 패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환상은 그를 다시 한 번 대권전쟁의 장으로 불러냈을 것이 확실하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법. 박근혜에 대한 환상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또 문재인이 받는 비판에 비례해 한층 더 커졌을 것이다.
겪어보기 전에는 결코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박근혜라는 인물을 대한민국이 어차피 한 번은 경험해야 했다면 지난 2012년 그의 당선은 차라리 잘 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박근혜가 콘크리트 지지층과 보수언론의 엄호를 등에 업고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은 2018년 2월부터 박근혜 체제가 시작된다는 걸 뜻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박근혜’라는 매를 먼저 맞은 것이라 여긴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그 매가 이번 달을 끝으로 완전히 거두어진다면 박근혜로 인해 생긴 대한민국의 상처는 좀 더 빨리 아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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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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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좋은 글 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관도 변합니다
박근혜사태를 긍정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 글쎄요. 사회전반에 걸쳐 패배감을 증폭시킨 대재난(인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