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학에 젬병이었다. 수학만이 아니라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 숫자를 통해 자연의 이치를 추적하는 과목들에 다 그랬다. 한땐 열심히 안 해서 그러는 걸 거라고 생각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도 점수가 잘 안 나오는 걸 보고 내 머린 이과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반면 문과 과목들은 잘했다. 잘하기도 했지만 좋아했다. 좋아하니까 잘할 수 있다는 걸 그 경험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국어, 영어, 역사, 지리, 음악, 미술 등, 주로 생각과 말과 느낌으로 사물의 이치를 추론해내거나, 아니면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되는 과목들을 잘했고 좋아했다. 이과에 강한 한 교인이 나의 이 점을 잘 이해 못했는지 이런 핀잔을 줬다. 목사님, 답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좋아하고 잘할 수가 있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그 말도 참 맞는 게, 문과나 예술 계통의 과목들에는 정말 답이 없다. 답 대신 생각과 느낌이 주인 게 그쪽 영역들이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은 든다. 목사라는 직업 자체가 문과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목사는 말로 설교해야 하고, 글로 설교원고를 작성해야 하며, 사람들을 만나서는 주로 말로써 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니 목사가 안 되었으면 뭘 해 먹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면서 나를 목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곤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지난 몇 년 동안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아들 얘기다. 딸은 어려서부터 날 많이 닮아 원래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 쪽을 닮아 그나마 이과적 특성이 강한 애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아들은 고민 끝에 목사가 되기 위해 바이블 칼리지에 갔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문과적인 공부만 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 애가 쓴 에세이를 보고 큰 한숨을 지었던 기억이 있기에, 애가 과연 말과 글로 표현하는 철학이나 신학 같은 과목들을 잘해낼 수 있을까, 매우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신학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지! 학교에 입학해 첫 학기를 지낸 후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슨 과목이 재밌어? 이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FOUNDATION.” 이 과목은 일종의 철학과목 같은 거였다. 기독교의 복음을 세상에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사상적 이론들이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는 과목이다. 추상적이며, 현학적이며, 매우 이론적인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과목이 재미가 있어?! 이런 과목 성적이 그토록 좋아?! 정말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대학 졸업 후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공부 중이다. 계속 공부를 재밌게, 또 잘하고 있어서 목사 아버지로서 정말 흐뭇하다. 흐뭇한 마음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새로운 각도에서 느끼고 있다. 어쩜 이런 것까지도 날 닮지?, 하는 신비감이다. 외모만 닮게 하시는 것을 넘어 아비의 내면적인 특성까지 닮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요새 아들을 위해 많이 기도한다. 두 가지 내용을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한다. 첫째는 좋은 신앙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좋은 목회는 목회자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된다. 사모도 같이 좋아야 한다.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나이기에, 목회자 될 아들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 셈이다.
두 번째 기도제목은 아들이 정말 ‘좋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신학교 나왔으니까 그냥 목사 되는, 그런 식의 목회자 말고, 미국에 사는 다음세대의 심령을 바꿀 수 있는 설교가요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다. 아들이 강단에 서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청중들의 의식과 마음의 기둥이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욕심이라고 말해도 좋다. 계속 그렇게 거창하게 기도할 것이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좋은 목회자가 되는 아들의 미래와, 역사적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이나 로이드 존스 목사처럼 강단에서 말씀을 포효하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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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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