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자주 던지는 예일대 법대 에이미 추아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책 ‘제국의 미래’에서 “역사상 세계를 제패한 제국들은 포용의 전통이 필수적이었으며 제국의 운명은 그 시기의 상대적 포용지수에 의해 결정됐다”고 밝혔다. 인종과 종교, 그리고 배경을 따지지 않고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를 끌어들여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미국의 미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아 교수는 만약 미국이 쇠퇴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포용성의 상실 때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타깝게도 추아 교수의 전망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이민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를 천명하는 등 불포용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양식 있는 사람들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포용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런 전통과 문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정책을 통해 수퍼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지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라는 인물의 등장과 함께 서로의 차이가 용인되고 존중되는 다원주의라는, 미국이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 온 가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떠들어 댄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문은 걸어 잠그고 장벽은 높이 쌓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면 미국이 자랑해 온 개방과 포용의 문화를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행동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개방은 복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복지’라고 하면 흔히들 빈곤층을 위한 구휼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복지는 사실 특정계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한, 즉 모두를 위한 정책이다. 복지를 통해 돈이 순환되고 계층 간 격차가 줄어들면 건강한 소비계층이 형성되고 경제는 외부 충격에도 덜 흔들리게 된다. 사회적 안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지구촌을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복지선진국들은 별 흔들림 없이 성장을 지속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가의 개방, 즉 ‘열린 이민’ 또한 복지와 유사한 선순환을 형성해 준다. 미국에 들어온 합법 혹은 불법 이민자들이 경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해 왔는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젊은 이민자들은 노동인구의 고령화 시계를 늦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숙련 기술자들은 하이텍 분야에서, 또 저숙련 노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미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수요를 메워주면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경제의 탄력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은 국가의 폐쇄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민은 미국에도 좋고 다른 나라들에도 좋다. 가난한 나라에서 미국으로 들어온 이민자들은 미국 경제뿐 아니라 자신들의 모국 경제까지 살찌운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의 파이는 그만큼 커지고 미국으로서는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이 확대된다. 만약 가난한 나라 인구 중 5%정도만 잘 사는 나라로의 이주가 허용된다면 그 어떤 정책들보다도 지구촌 경제를 성장시키게 될 것이란 연구도 있다.
어디를 집중적으로 비춰보느냐에 따라 인식은 달라진다. 이민자들이 일부 백인들의 저숙련 일자리를 가져가는 게 사실일지는 몰라도 개방과 포용이 가져다주는 이득의 크기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것이 전부인양 여기에만 스팟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비추며 나라 문을 걸어 잠그려 하는 것은 편견에서 비롯된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들 의식 속에 심리적 장벽을 만들고 국경지역에는 물리적 장벽을 쌓으려 하는 트럼프식의 발상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욱 ‘왜소하게’ 만들 따름이다. 그런데도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무지한 선동가란 비판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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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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