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좀처럼 잊어버리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매우 단순한 일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어느 일본인의 시(詩)에 다음과 같은 짧은 시 구절이 있다. 일본어로 쓰인 것을 번역하면 망각이란 잊어버리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pence)'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팡세라는 말은 불어의 생각하다, 사고하다, 사색하다 라는 단어이다. 그래서 ‘Je pence’하면 I think라는 문장으로 ‘나는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들판에 서 있는 갈대는 바람이 불면 휘청거리고 거센 비바람이 불어 닥치면 꺾어지고 쓰러지며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우리 인간들도 들판의 갈대처럼 험한 세상의 세파에 흔들리고 부딪치면서 꺾이고 쓰러지는 존재이나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며 은사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위대한 것이며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사고의 능력이 없다면 동물이상의 존재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망각하기를 잘한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들은 잊어버리기를 잘한다. 그래서 "망각의 동물”이라는 저속한 말도 듣게 된다. 이렇게 잊어버리기를 잘하면서도 무엇인가를 잊어버리지 못하여 고통하는 사람도 있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쉽사리 잊어버려서 도리에 어긋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첫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픔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으로 치유하고, 역사의 쓰라린 민족의 고난과 아픔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 가는 듯하다. (이 망각이라는 것이 꼭 이렇게 유효적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생각할 수도 있고 망각할 수도 있다. 생각하는 것은 능력이요, 망각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다. 무능력인 것이다. 무능력은 무의지적(無意志的) 죄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고, 세월은 별로 흐르지 않았는데도 쉽사리 잊혀져 버리는 것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역사의 현실적 의미는 그 한 시대를 체험한 사람들의 진실한 증언을 듣고 배워서 이어져 가고 계대(繼代)되어온 결과인 것이다. 예를 들면 60년 전의 1945년 8.15광복의 감격의 체험이나, 1950년 6.25 동족상잔의 비극의 체험은 그것을 체험한 당대 사람들만의 것이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며 그 나라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그 민족에게 계대(繼代)되어가는 현실적 체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잊어버리기 쉬운 감격적인 사실체험이나 잊혀지지 않는 쓰라림 같은 체험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잊혀져 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기억하되, 선한 생산적 미래지향 능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이것을 망각이란 이름으로 버리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원수되었던 아픈 기억을 망각의 늪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기억하되 선으로 보는 나의 가슴을 길러가는 것이(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행하라. 살전 5:15) 곧 생각하는 능력이다.
어떤 사람이 미켈란젤로의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품을 보고서, “당신은 저렇게 모나고 단단한 대리석으로 어떻게 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냈소?”라고 물었다. 미켈란젤로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본래 저 대리석 속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 대리석 속에 이미 있는 아름다운 것을 망각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묻혀있는 그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필요 없는 부분들을 제거한 것뿐입니다.
” 하나님은 이 세상만물을 만드실 때 이미 아름답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게 만드셨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그 아름다운 것을 잊고서 그 이상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미 그 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나 자신 속에 아름다운 것들을 미리 채워 놓은 것이다. 우리는 죄의 성품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잊어버리도록 가리고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아름다운 삶을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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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경/ 은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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