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카리브해 버진아일랜드에서 물보라를 맞으면서 서핑을 하고 활짝 웃는 사진이 신문에 게재됐다. 은퇴생활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임기 중 암살되었거나 병사한 대통령 외에는 대부분 임기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하거나 회고록 집필, 강연, 여행, 사회봉사를 했다.
물론 백악관에 다시 들어오려고 한 전 대통령도 있었고 그 중 클리블랜드(22대, 24대)만 성공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하원의원,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은 상원의원,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대법원 수석재판관으로 9년간 봉사하기도 했다.
재임시절 가장 인기 없었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임기 후 오히려 위대한 대통령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국제 해비타트와 함께 사랑의 집짓기 활동을 했고 본인이 설립한 카터센터는 국제평화 증진활동을 펼쳐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도 지미 카터는 조지아 주 자신의 땅콩 농장에 지역주민들을 위해 설치된 태양광 에너지발전소 준공식에 참여했다.
지난 20일은 프레지던트 데이(Presidents‘ Day)였다. 2월에 생일이 있는 초대 조지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기념하고자 1879년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프레지던트 데이로 정했다. 1885년 미 전역에 연방공휴일로 정해지며 프레지던트 데이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들의 업적과 명예를 기리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임기 후 남의 집을 지어주고 댄스도 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하는데 한국의 대통령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1~3대 대통령 (1948~1960) 이승만은 자유당 독재와 3.15부정선거로 인한 4.19혁명이 일어나며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하와이로 망명, 그곳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5~9대 대통령(1963~1979) 박정희는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부마사태 직후 김재규의 총탄에 암살됐다.
11~12대 대통령 (1980~1988) 전두환은 은퇴 후 12.12 사태, 5.18 민주화운동 무력진압 등으로 인한 내란죄, 반란수괴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되었고 13대 대통령(1988~1993) 노태우는 퇴임 후 거액의 비자금 수수가 발각되어 수의를 입었다.
14대(1993~1998) 대통령 김영삼은 임기말기에 한국의 경제위기 IMF사태로 모든 업적이 무로 돌아가 은퇴 후에도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16대(2003~2008) 대통령 노무현은 퇴임 후 뇌물수수 관련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후 스스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나마 15대 대통령(1998~2003)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는 하나 임기 중 비자금 사건으로 두 아들이 구속되었다. 현 17대 대통령 박근혜는 2016년 12월9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 정지되어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중이다.
왜 이렇게 한국의 대통령 자리는 불운의 연속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아마도 ‘국민’의 자리에 ‘대통령’을 갖다놓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쥐었어도 재임 중, 혹은 은퇴 후에 보니 그것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신기루가 되었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한 핀란드 최초의 여성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이 기억난다. 집에서 가져온 다리미로 직접 옷을 다려 입고 호텔전문 미용사 대신 직접 머리손질을 하고 호텔 치약은 새것이니 그냥 두고 가져온 여행용 치약을 끝까지 짜서 사용하는 알뜰함을 보였다.
2000~2012년 임기를 마친 후 혼자서 천바구니를 들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길가 꽃집에서 꽃을 사고 길거리 악사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타르냐 할로넨은 핀란드의 ‘국민엄마’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불행한 대통령을 많이 가진 한국으로서는 정말 부러운 일이다.
대통령 출신이라면 돈 걱정은 않을 것이니 리더십이나 컨설팅 재능기부, 지역사회 자원봉사 등으로 일도 조금, 노는 것도 조금, 여가생활도 조금 하면 본인 건강에도 좋을 텐데 말이다. 언젠가는 한국에도 프레지던트 데이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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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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