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민족의 성군인 다윗왕은 팔방미인이었다. 가수이자 하프 연주자였고 댄서였으며 만인의 심금을 울린 불세출의 시인이었다. 요즘 세상이라면 그래미상과 노벨문학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는 장군의 기개도 타고 났다. 적국의 거인장수 골리앗이 두려워 모든 유대 군인들이 설설 길 때 소년 다윗이 맨손으로 나가 물매 돌 하나로 그를 때려잡았다.
백전백승으로 백성의 칭송을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한 다윗의 운명이 별안간 정반대로 바뀌었다. 자기의 장인인 사울 왕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혔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까봐 지레 겁먹고 그를 죽이려고 10년 가까이 쫓아다녔다. 고단해진 다윗은 한때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도망갔다가 붙잡히자 미친 척 연기해 살아나왔다.
사울이 전사한 뒤 왕이 된 다윗은 주변 국가들을 정벌하고 영토를 유대사상 가장 크게 넓히며 태평성대를 구가했지만 운명이 또한번 급변했다. 이번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셋째 아들 압살롬이 왕위찬탈을 노려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잠자다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왕궁에서 도망쳤다. 그가 연예인으로 살았더라면 두 차례 고생을 모두 면했을 터이다.
성경엔 제명에 죽지 못한 왕들이 수두룩하다. 다윗 가문에서 독립한 북쪽 이스라엘에선 쿠데타가 다반사였다. 한달 만에 죽은 왕(살룸)도, 반년 만에 죽은 왕(스가랴)도 있다. 중학생 때 소설 ‘아이반호’를 읽고 십자군 원정에 나선 ‘사자 왕’ 리처드가 동생 존에게 권좌를 잃었다가 로빈후드 등의 도움으로 복권했다는 얘기에 권좌가 그렇게 좋은 건지 의아했었다.
먼 나라의 옛날 얘기를 들먹일 것도 없다. 우리 역사에도 왕위쟁탈 참극이 적지 않다. 쿠데타로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반발하는 고려충신 최영 장군과 정몽주를 죽이고 고려왕조의 왕씨 가문을 거의 멸족시켰다. 세조는 조카인 단종의 복위를 꾀한 성삼문 등 신하 6명을 능지처참했고, 영조는 대를 이을 아들(사도세자)을 뒤주에 가둬 굶겨 죽였다. 인류역사는 사실상 골육상쟁으로 시작됐다. 아담의 장남인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왕위 다툼이 아니라 여호와의 편애를 시기한 탓이다. 유대민족 시조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쌍둥이 형(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아 유대민족 12지파의 조상이 됐다. 그 아들들이 공모해 아버지가 총애하는 11번째 동생 요셉을 애굽 대상에게 노예로 팔아넘겼다.
세월이 흘러 자본주의와 배금사상이 세상을 휩쓸면서 골육상쟁의 본무대는 형제간, 부부간, 부자지간 등의 재산싸움으로 옮겨가게 됐다. 삼성, 현대, 롯데, 금호, 효성, 두산, 진로, 한화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재벌그룹들이 대개 상속권 아니면 경영권을 놓고 내분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죽은 부모가 남긴 아파트를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원수가 되는 형제들도 있다.
지난 13일 골육상쟁의 결정판이 터졌다.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공항에서 출국하려다가 암살당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그의 얼굴에 독가스(혹은 독극물 스프레이)를 뿌리고 달아났다가 잡힌 여성 용의자들이 북한공작원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들에게 김정남의 암살을 청부한 최종배후가 김정은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후 340여명을 처형(숙청)했다. 그중엔 고모부 장성택도 포함됐다. 아버지(김정일)의 오른팔이었던 장성택은 장남이자 이복형인 김정남의 후견인이기도 했다. 권력을 승계 받은 김정은은 김정남 제거부터 획책했고 선 수순으로 장성택을 총살했다. 다윗을 죽이려한 사울 왕처럼 김정은도 자기 권좌를 넘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죽인다.
요즘 한국정세를 보면 권력다툼이 골육상쟁의 형태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반대파와 지지파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무한대결을 벌인다. 곧 내려질 헌재의 탄핵여부 결정이 어떤 사태를 초래할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그 와중에 차기 대권을 잡겠다며 ‘잡룡’들이 날뛴다. 아이반호를 읽은지 60여년이 지났지만 권좌가 그렇게 좋은 건지 아직도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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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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