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으로 여행할 때 나를 맞이하러 공항에 나온 사람이 ‘Mr. Paul’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아시아권에서는 늘 성이 먼저고 이름이 뒤에 따라 나온다. 미국에서도 일본 총리 이름은 아베 신조로 표기된다.
외국인 교수를 픽업한 택시기사가 성과 이름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탓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경제와 안보 면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의 지도자에게 이런 실수를 범했다면 그건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가 일본의 아베 총리를 신조 총리로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가 아는 한 아베는 그를 맞이한 호스트를 도널드 대통령이라 호칭하지 않았다.
사소한 일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만약 이번이 처음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지난 3주간 우리는 곳곳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전시하듯 내보인경악스런 생무식(raw ignorance)을 목격했다.
더욱 고약스런 것은 백악관과 연방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이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전문지식 혹은 주제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은 겁쟁이와 약골의 전유물이라고 믿는 듯 보인다. 한마디로 무식이 힘이라는 태도다.
법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법리 전문가인 벤자민 위티스는 세간에 널리 인용된 분석을 통해 악명 높은 반이민 행정명령을 “무능으로 인해 축소 조절된 악의”로 묘사하고 “행정명령은 전문적인 검토를 전혀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법원에서 기각되기 딱 좋은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안보 문제도 무지가 지배한다. 대통령은 크렘린과의 의심스런 관계로 논란을 빚은 백악관 안보수석보좌관에게 계속 힘을 실어주었을 뿐 아니라 우익 음모론자들로부터 전략적 정보를 얻었다.(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마이클 플린은 이른바 ‘러시아 내통’ 혐의로 결국 부임한지 3주 만에 낙마했다.)
교육부문 역시 무지가 판친다. 교육부 장관인 베시 디보스는 인준청문회에서 교육과 관련한 가장 기본적인 이슈에 백치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외교부문의 경우는 어떤가. 백악관이 외국 지도자들의 이름을 바르게 알고 있는지 국무부 담당자에게 확인하는 것조차 어렵다. 아베에 앞서 테레사 메이 영국총리 방문 당시 작성된 공식의제에도 그녀의 이름이 수차례 잘못 기입되어 있었다.
경제 전선은 아예 무인지경이다. 기술적 전문성을 제공해야 할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의 위상은 각료급에서 한 단계 격하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문위원에 지명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수조달러대의 기반시설 개보수를 둘러싼 거창한 사업계획을 기억하는가? 하지만 소리만 요란했을 뿐 백악관은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트위터 통수권자’를 폄하할 의도 따위는 없으나 그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전문성에 대한 경멸이 대세를 이룬다.
예를 들어 가장 영향력 있는 공화당 경제학자들은 당내에 숫하게 포진하고 있는 보수성향의 진지한 학구파들이 아니라 숫자에 무지한 그룹에 속한다.
의료보장과 관련해 공화당이 보이는 패닉 현상을 고려해 보라. 많은 당내 인사들은 오바마케어의 주된 부분을 폐기할 경우 수천만 명이 의료보험을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충격을 받은 듯하다.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본 경제학자라면 벌써 수년전에 의료보험 개혁이 어떤 부문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당내 인사들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분석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의회에 의해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바로 이 점이 포인트다. 유능한 변호사는 당연히 무슬림의 입국금지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말할 것이다. 유능한 과학자는 기후변화가 진짜라고 알려줄 터이고 유능한 경제학자들은 감세에도 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유능한 선거전문가는 수백만 명의 불법투표가 없었다는 점을 잘 알 것이고 유능한 외교관들은 이란과의 거래는 타탕한 것이며 푸틴이 미국의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그래서 유능은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질문할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 정도로 어리석다면 어떻게 선거에서 이겼을까”라고.
그에 대한 부분적인 대답은 전문가, 아니 ‘이른바 전문가’(so-called experts)에 대한 경멸이 전체 유권자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극심한 편협성만이 선거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유일한 ‘어두운 힘’이 아니다. 반지성주의는 물론이고 “오피니언은 신중한 연구와 깊은 사고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엘리트들을 향한 적대감 역시 다크 포스(dark force)다.
선거운동은 통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뉴스 미디어가 상대 후보의 실제적인 정책 이슈를 모두 합친 것보다 그를 둘러싼 유사 스캔들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의 상황은 엉망진창이고 모든 신호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면에서 제 할 바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멍청함은 좋은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 악의는 무능에 의해 축소된다. 행정부의 무능과 무지 탓에 반이민 행정명령은 법원에서 연이어 기각됐다. 공화당의 무지 때문에 오마마케어에 대한 기습공격은 수렁에 처박혔고 그 덕분에 수백만 명이 계속 혜택을 입고 있다.
또한 내부로부터 붕괴된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제주의로의 행진 속도를 늦추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국정은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위기는 발생하는데 우리의 권력 상층부는 지적 진공상태다. 두려워하라, 몹시 두려워하라.
■폴 크루그만 약력
-예일대 경제학부 졸업
-MIT 경제학 박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1882~1983년
-전 MIT·프린스턴 대학 경제학·국제학부 교수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현 뉴욕시립대 경제학 교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1999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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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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