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아마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지난 몇 주간의 숫한 트윗과 행정명령, 공격과 반격의 사이에서 나는 심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따라서 나는 매일 이어지는 아수라장에서 떨어져 나와 떠들썩한 소음의 한 가운데서 이 행정부의 근원적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시그널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트럼프 시대를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의 최고 신봉자는 여러모로 보아 행정부의 2인자로 꼽히는 스티븐 배넌임이 분명하다.
배넌은 총명하고 학식이 풍부하며 미국사에 정통하다. 배넌이 감독한 숱한 영화와 연설을 살펴보면 그는 일부 사람들이 비난하듯 인종주의자라든지 백인우월주의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배넌은 특이한 보수주의자다. 우리는 경제적 자유주의자(economic libertarians)에 아주 익숙하지만 배넌은 자유시장을 의심하는 구 유럽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전통적인 문화와 종교를 보존하고 민족주의와 군사적 가치를 극성스레 옹호한다.
예컨대 지난 2012년 보수주의자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배넌은 성공한 엘리트인 밋 롬니에 대해 그가 느끼는 혐오감과 새라 페일린을 향한 존경의 배경을 설명했다.
배넌은 페일린의 장남이 군인으로 이라크에서 복무를 한데 비해 ‘올-아메리칸 가이’처럼 보이는 롬니의 다섯 아들은 하나같이 단 하루도 군 복무를 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배넌의 핵심적 세계관은 그가 감독한 영화 “제로 세대”(Generation Zero)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에 중점을 둔 다큐멘터리의 도입부는 마치 버니 샌더스가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은행가들에 대한 격렬한 분노로 출발한다.
그러나 영화는 금융위기가 그보다 더 심각한 도덕적 위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쪽으로 재빨리 이동한다. 감독의 진짜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사회의 전통적 구조를 허물고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시즘 문화’를 창조한 60년대와 베이비 부머 세대를 비난한다.
도대체 우드스톡이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어떻게 금융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일까?
배넌에 따르면 구식 가치의 붕괴는 사물과 사람을 돈이라는 단 한 가지 방식으로 측량하는 자기중심주의 문화를 초래했다.
영화는 이어 정치권과 금융계가 자유무역협정으로 그들의 이익을 챙겼지만 국가를 배신하고 미국 중산층의 동공화를 불러왔다고 비난한다.
미국사에 대한 배넌의 어둡고 반이상향적인 견해는 인기 있는 극좌파 학자 하워드 진의 역사관에 이상하리만큼 근접해 있다. 진은 그의 저서 ‘미국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에서 미국인의 99%가 막강한 힘을 지닌 1%의 엘리트들에 여러 면에서 철저히 짓밟혔다고 주장한다.
진/배넌의 세계관에 따르면 평범한 대중은 사악한 마왕들에 의해 조종되는 장기판의 졸에 불과하다.
이보다 더 정확한 미국 근대사 버전은 1960년대에 시작된 문화적 전환이 강력하고도 깊은 뿌리를 지닌 개인주의라는 미국적 힘에 의해 동력을 제공받았다고 기술할 것이다.
미국은 늘 개인주의적이었다. 배넌과 트럼프는 미국의 일탈기에 해당하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향수를 지닌 듯이 보인다.
대공황과 뉴딜정책,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변형시킨 집단주의적 충동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인들은 신체의 자유와 개인적 성취 및 진보에 대한 오랜 갈망을 재강조 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의 세계는 멋지게 들린다. 사회진출을 원하는 여성, 투표권 행사를 소망하는 흑인, 지위향상을 염원하는 이민자, 얼굴 없는 대기업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기업가 지망생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개인의 번영을 허용한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젊고 진취적인 배넌이 대형 은행을 떠나 자신의 점포를 차리고 자영업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긁어모은 시간적 무대이다.
이 시기에 그는 할리우드의 바깥쪽에서 영화를 만들어 배급했고, 미디어 스타트-업을 막강하게 성장시켰으며 공화당 위계질서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정치인이 됐다.
같은 시기에 트럼프는 퀸스에서 나와 맨해튼으로 진입했고, 마천루를 지었으며 기득권층을 기겁하게 만들면서 유명인의 지위를 쌓아올렸다. 도널드 트럼프야말로 나르시시즘 문화의 대표적인 인물인 셈이다.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트럼프와 배넌은 모든 면에서 전통주의를 파기했다. 둘 모두 이혼경력이 있다. 배넌은 세 번, 트럼프는 두 번 이혼했다.
이들은 미국 사회가 아웃사이더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전통적인 도덕률을 깨뜨린 자들에게 낙인을 찍지 않았고 엘리트들의 힘이 강하긴 했지만 실제로 절대적이지는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트럼프와 배넌의 스토리는 현대 미국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미국을 향해 “내가 행동한대로 하지 말고 말한 대로 하라”는 낡고 진부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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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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