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창을 내리고, 첼로의 어두운 선율에 빠져보는 것도 영혼을 위한 채찍질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마치 비를 맞으며 어둠의 길을 걷는 자학…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전율(뼈저림)같다고나 할까.
첼로는 저음에서 울리는 깊은 감성의 소리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악기이기도 한데, 한국에서의 마지막 1년은 첼로의 애절함이 있는 마지막이기도 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움도 남았고, 어둠 속에 안개를 바라보듯 일말의 두려움도 일었다. 깊은 절망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섭섭함… 버스에서 내려 갑자기 소나기를 맞을 때의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인생이란 가끔 비가 올 때가 있고 또 그 비를 맞아야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것 저것 정리하고 난 작은 방 안에는 낡은 흑백 TV 한 대, 허름한 책상 그리고 FM 딸린 녹음기 한 대가 전부였다.
방안은 어두웠고 오후 3시쯤 잠깐 햇빛이 비치다가 사라지고 말았는데 종일 방안에 갇혀 책을 들척거린다든지 잠깐 산책하는 시간빼곤 멍하니 있다가 좋은 음악이 나오면 이것저것 녹음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때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 첼로 연주들이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방안의 어두운 분위기와 첼로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흔히 예술이란 젊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이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보다는 어떤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젊음에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목마르도록 안타까운 절실함이라는 것이 있다. 자아가 열리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영혼의 울부짖음이라고나 할까. 그 당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등을 많이 들었는데 그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너무도 가슴 아픈 청춘의 낙향이요 쓰라림… 마치 쏟아지는 비처럼 처량하기도 하고 또 눈물같기도 했다.
인생이란 긴 길을… 무작정 걸어야만 하는 절망… 그 절망이 찾아올 때 조차도 음악이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것이기에… 인간은 또 절망 속에서도 허무의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이리라. 폭포처럼 장엄했고 또 선계처럼 먼, 서늘한 악기의 울림… 그 음악의 안타까움과 동경이여.
지난 한 주간은 장한나(연주)의 ‘콜니드라이’를 들으며 쏟아지는 비 속에, 많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치유와 고통이란 늘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무겁게 내려앉는 영혼의 고통이 없으면 진실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처럼… 어둡지만 또 어둡기 때문에 묘한 치유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악기, 첼로 선율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또한 브루흐의 ‘콜니드라이’일 것이다.
‘콜 니드라이(Kol Nidrei)’는 ‘신의 날(Day of Atonement)’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유대교에서 ’욤 키푸르(Yom Kippur, 신의 날)‘라고 일컫는 속죄일에 부르는 성가이기에 붙여진 제목이다.
아람어 ‘콜 니드레(Kol Nidre)’에서 유래했는데 ‘모든 서약들(All Vows)’이란 뜻으로서 이 기도송을 통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지키지 못한 서약들이 모두 용서받길 기원했다고 한다.
브루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음악박사,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박사와 철학박사를 받은 음악가이자 종교인, 학자로서도 명성이 높았는데 그가 지휘하던 유대인 합창단원이 준 멜로디에 감동을 받아 작곡한 작품이 바로‘콜 니드라이’였다.
브루흐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이 곡으로 유대인으로 의심받게 되어 사후 그의 가족들이 많은 고초를 겪게 되며 나치 정권에서는 10여년간 브루흐의 곡이 금지되기까지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과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특히 중간부분에 나오는 첼로의 선율이 아름다워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브루흐는 바흐처럼 종교곡들을 주로 작곡한 신앙심의 사람이었는데, 많은 성악곡에도 불구,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콜 니드라이’, ‘바이올린 협주곡(G단조)’ 등 기악곡이었다. 그것은 악기에서 울려나는 독주 선율이 마치 영혼에서 우러나는 성가… 그 간절함이 묻어나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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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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