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한국 정치권은 조기대선 모드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대선과 맞물려 개헌 또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적 가치를 결여한 지도자에 의한 ‘인치’의 폐해를 혹독하게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선이 다자구도로 형성되면서 개헌은 합종연횡과 연대를 위한 연결고리로 활용되고 있다.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국민들 여론 역시 마찬가지다. 크게 보자면 내용은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내각제로 갈리며 시기는 대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전반적으로는 대선 이후 4년 중임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다. 유력 후보들의 주장에는 각각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이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계산의 흔적이 역력하다.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지금의 정치적 혼란과 퇴행이 헌법에 규정된 권력구조 때문에 초래된 것일까. 대한민국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것은 사실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대통령의 권력이 좀 더 비대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를 엄격히 분리시켜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른바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과 폐해를 제도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민주화 이후 여러 명의 대통령이 5년 임기를 거쳐 갔다. 민주적인 소양을 전혀, 혹은 거의 보여주지 못한 수준 미달 대통령들도 있었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권위를 내려놓으려다 오히려 뭇매를 맞은 대통령도 있었다.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이 누구였느냐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누가 청와대에 들어앉았는지에 따라 삼권의 분립과 균형이 크게 좌우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독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 때문에 대통령제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권력구조 개편 논의까지 나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4년은 분명 현 대통령의 실패지만 이것을 곧 대통령제의 실패로 규정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
개헌을 통해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4년 중임제가 채택됐다고 하자. 정치적 상황이 과연 지금보다 훨씬 안정될까. 재선을 위한 포퓰리즘의 극성으로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적대적 대립이 극심한 한국정치 상황에서는 4년 중임보다 현행 5년 단임이 오히려 적합한 권력구조일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에도 혼란과 부패의 씨앗은 상존한다.
결국 정치적 안정과 발전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현재 상황은 정치적 안정이 제도보다 사람의문제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라는 독불장군 하나가 대통령 자리에 앉자마자 나라 전체가 크나큰 혼돈에 휩싸이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자질 미달 권력자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불량품으로 변질된다.
결국 정치적 수준과 안정은 어떤 권력구조, 어떤 헌법조항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권력을 쥐어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들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애꿎은 권력구조를 탓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는 게 먼저다.
그리고 현명한 선택이 한차례로 끝나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린 사회는 복원력이 뛰어나다. 설사 일부 지도자의 일탈이 있다 해도 곧 제자리를 찾아 간다. 다음 대선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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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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