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1월30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책략가인 스티븐 배넌을 ‘사실상의 대통령(de facto president)’이라고 불렀다. 법적인 대통령(de jure president)은 트럼프이지만 취임 후 열흘 동안 서명한 20개의 행정명령들의 철학적 그리고 전략적 근거가 배넌의 정치사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스티븐 배넌은 누구인가? 여러 보도와 해설기사들은 그를 혁명가 부른다. 레닌이 좌익혁명가면 배넌은 우익혁명가라는 것이다.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1953년에 태어난 배넌은 버지니아 텍을 졸업한 후 7년간 해군장교로 근무한 다음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국가 안보분야의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하버드 대학으로 전학하여 MBA를 취득한 다음 월가의 골드만삭스 은행에 취직했다가 동업자와 함께 투자은행을 만들어 엄청난 부자가 된다. 그의 고객회사 중 하나가 삼성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배넌은 2004년부터 보수적 내용의 선동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공화당 우파 성향인사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08년의 재정위기는 그를 정치적으로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다. 배넌은 그해에 시작된 경제침체가 평민 노동자들에 대한 배반의 발로라 분석하면서 배반계급을 민주당과 공화당의 엘리트라고 규정하는 티 파티의 반 엘리트 운동에 적극 동참한다.
배넌은 2012년에 브레이트바트닷컴(breitbart.com)이란 극단적 우파 웹사이트 창시자가 죽으면서 그 뒤를 이어 회장이 되어 강력한 정치적 발판을 마련한다. 2014년에는 자신을 전 세계적인 티 파티 운동의 선봉장으로 묘사하면서 그가 ‘다보스 파티’라는 이름 지은 국제 금융분야의 엘리트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2014년 IS가 테러공포의 얼굴로 등장한 것은 배넌에게 또 하나의 동조자 모집구호를 제공했다는 평이다. 배넌은 미국이 ‘회교도의 성전’을 자행하는 이슬람 과격분자들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트럼프가 대선운동에 뛰어든 다음 구호처럼 외쳐온 많은 정견들이 배넌에게서 나왔다. 트럼프가 처음 두 사람의 선거 매니저들을 갈아치우고 켈리안 콘웨이를 새 매니저로 영입하면서 배넌을 옥상옥으로 선거위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배넌의 영향력은 극대화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을 정치적 모사로서는 전례가 없이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에 공식 멤버로 임명한다. 오바마의 정치적 책략가였던 데이빗 액셀로드가 안보회의에 가끔 참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공식멤버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안보회의의 핵심 분과 위원회는 국무장관, 국방장관, 안보장관, 국가정보국장과 합참의장이 공식 멤버였었는데 그 분과위원회에 배넌이 추가되는 ‘비정상적’ 조처가 취해졌다. 또한 국가정보국장이나 합참의장은 그들의 분야와 연관된 사항들이 토론될 때만 참석하도록 격하된 반면 배넌은 항상 참석할 수 있어 관계자들을 대경실색시키는 모양이다.
배넌의 입김은 트럼프가 서명한 7개국 이슬람 국가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려있다. 그러나 배넌과 백악관 보좌관들은 비자나 이민 관련 당국인 국무부와 국토안보부의 조율을 전혀 거치지 않고 이를 밀어붙여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백악관 비서실장 등 정상적 보좌관들과 배넌 쪽 보좌관들과의 세력다툼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백악관의 비밀이 기자들에게 줄줄 새고 있다는 일부의 관측도 있다.
그래서인지 2월2일자 신문에는 트럼프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그리고 멕시코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맹방중 하나인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전화 중 오스트레일리아의 난민들 중 1,250여명을 미국에서 받아들이겠다는 오바마 시절의 언질을 재확인 받고자 했을 때 트럼프가 언성이 높아지면서 전화를 불손하게 끊는 바람에 1시간 예정이었던 통화가 반도 안 되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국방장관 국무장관 등 ‘정상적인’ 각료들이 배넌의 영향력 아래서 트럼프를 보좌해야 간신히 안심할 수 있다는 평까지 나오는 세상이니 배넌의 사실상 대통령직 수행은 정말로 심각한 큰일이다. 미국은, 아니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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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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