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고수입, 큰 키에 지성과 미모까지 다 갖춘 한 친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를 탐탁지 않아 하신듯하여 그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행복하지만, 그와의 미래를 생각하는 순간에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는 식의, 드라마에서 늘 봐 오던 진부한 레퍼토리가 연상되었다.
자녀가 최고의 것을 선택하기 바라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애지중지 키운 금쪽같은 자녀가 기대에 어긋나는 선택을 하는 것 같으니 복장이 터지고, 자녀는 부모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꼭두각시의 삶을 살 것인가, 그 뜻을 어겨 불효자로 낙인이 찍힐 것인가의 난처한 갈림길에 놓여 고뇌하게 된다.
이런 고민이 비단 배우자의 선택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못하다면 언젠가 행복해 질 거란 기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며 인생에 회의를 느끼던 어느 날, 나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글쟁이가 될 것이라 선언했었다. 딸의 선언이 철없고 배부른 소리로 들렸던 걸까. 공부를 끝내고 자격증만 따면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시던 부모님의 반응이 매우 차가웠다. 부모님은 내가 수입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행복한 것 보다는 불행을 약간 감수하더라도 금전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예측이 가능한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으셨으리라. 과연 부모가 진정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문명의 발달과 그에 따른 사회구조 및 물질적 가치의 변화로 인해 삶도, 행복의 기준도 진화했다. 1950년의 행복은 어쩌면 생존 그 자체였고, 1960년의 행복은 궁핍함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말해주듯 7080세대의 행복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로움 이상의, 상대적으로 더 잘 먹고 더 잘사는 성공적 경쟁이었다.
똑같아야 살아남던 정형화된 사회가, 똑같으면 존재감이 없어지는 개성지향 사회로 변형되면서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행복이란 개념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정보산업의 첨단화로 남들의 이목에 한층 더 신경 쓰게 되었으며 이제는 남들이 보기에도, 또 자신이 느끼기에도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행복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간의 대립을 오로지 세대차이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녕 ‘행복’을 목표로 살고 있다면 어째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산다는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썼으며, 왜 국민 대다수의 불행지수가 하향선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우리는 미래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데 급급한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졌다. 느낄 수 있는 과정보다 보이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적 트렌드와 모든 것을 서로 비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문화는 이제 특정 세대가 아닌 모든 세대의 보편적 특성이 돼 버렸다. 행복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성장이 경제적 성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20여 년간 한 중소기업의 간부로 근무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그만두고 운전사가 되었다는 사람을 만났다. 전보다 돈벌이는 시원찮지만 훨씬 큰 해방감과 삶의 만족감을 느낀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행복은 성공을 거머쥐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가파른 산을 오르고 마라톤을 뛰는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도 얼마든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자가 찾아가는 목적지일 뿐이다. 그러니 행복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도, 또 자녀도 서로의 방식만을 고집하기에 앞서 최선을 다해 무조건적으로 서로 사랑하며 최대한 이해해 주는 것은 어떨까? 서로를 응원하되 조종하려 들지 않는 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시간 다음으로 줄 수 있는 가장 큰 존재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기대가 너무 크다 보면 결과에 따른 실망도 커질 수 있다. 너무나도 가혹한 기대치를 조금만 낮추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한다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행복을 찾아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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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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