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고인기 관광지는 뭐니뭐니해도 만리장성이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이 800만명을 넘었다. 중국평원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이 약 2,200년전에 세웠다는 5,500마일(8,850km)의 이 석축장벽은 피라미드(이집트), 마추픽추(페루), 페트라(요르단)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조물로 꼽힌다. 유네스코가 30년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미국에도 불원간 만리장성이 세워질 전망이어서 미국사회가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닷새만인 지난 25일 미국-멕시코 국경 1,989마일에 소위 ‘트럼프장성’을 세우고 불법체류자 추방도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하지만 진나라 백성들이 만리장성 건축에 결사반대 했듯이 미국인들도 대다수가 트럼프장성 설치에 반대한다.
지난해 선거 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트럼프장성 설치에 반대했다. 선거 전인 8월 퓨 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는 반대비율이 61%였었다. 역시 선거 전인 10월의 로이터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49%가 트럼프장성을 돈 낭비라고 꼬집었고, 31%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반 이민정서의 본고장인 애리조나에서 조차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만리장성과 트럼프장성은 비슷한 점이 많다. 만리장성은 전부 진시황이 세운 게 아니다. 몇백년전부터 지역적으로 세워져 있던 장성들을 보수하고 공백부분을 신축해 연결했다. 한참 후인 명나라 때에도 장성이 건축됐다. 트럼프도 1,989마일 국경 전부에 새로 담을 쌓는 것이 아니다. 이미 654마일에는 철조망과 나무 울타리, 감시 카메라 등이 설치돼 있다.
진시황이 만리장성 건축에 30만 군사와 수백만 백성을 동원해 국고를 바닥냈듯이 트럼프장성 건축에 드는 경비도 만만찮다. 트럼프는 국경장벽 건축비를 80억달러로 제시했다가 최근 100억~120억으로 늘렸다. 기존 654마일 장벽의 건축비는 23억달러였다. 전문가들은 장벽을 트럼프 계획대로 건축할 경우 비용이 150억~2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장벽 일부를 철조망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던 트럼프는 말을 바꿔 “트럼프장성은 높고 강력하고 아름답고 침투할 수 없는 장벽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콘크리트 벽을 의미한 것이다. 한 저명한 건축가는 트럼프 계획대로 장벽을 지하 5피트, 지상 20피트 높이로 쌓으려면 3억3,900만 입방피트의 콘크리트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후버댐 건축의 3배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서둘러 발동한 건 국경장벽을 자기 임기 내에 완성하려는 속셈 때문이다. 그는 우선 연방예산으로 장벽을 쌓은 뒤 경비를 모두 멕시코에서 받아내겠다고 장담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핀잔을 듣자 그는 멕시코 무역 관세를 20% 높이고 불법체류 멕시칸들의 본국송금을 금지하는 둥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가 시큰둥하자 트럼프는 “미-멕시코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게 낫겠다”는 막말을 최근 트위터에 올렸다. 이에 발끈한 엔리케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회담취소를 즉각 통보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 전 쿠바와의 국교를 반세기만에 정상화한 것과 반대로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전통적 우방인 멕시코와 마음의 장벽부터 쌓았다.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멕시코인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1983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120만명의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어오다가 체포됐지만 2016년엔 41만5,000여명으로 격감했다. 기존의 국경장벽 덕분이 아니라 멕시코 경제가 그만큼 나아졌기 때문이다. 한때 꼬리를 이었던 한국인 밀입국자들이 본국이 잘살게 된 후부터 전무한 것과 매한가지다.
만리장성은 적군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폐물이 됐었다. 트럼프장성도 언제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 만리장성은 그나마 2,000여년이 지난 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끼며 귀중한 관광자원으로 거듭났지만 트럼프장성은 고작 20년쯤 지난 후 세계 7대 흉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포용과 화합 대신 독선과 분단을 택한 트럼프의 치부를 두고두고 드러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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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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