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연방하원은 중국인의 미 이민을 금지시켰던 ‘중국인 배제법’ 사과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몇 달 앞서 상원에서도 통과된 같은 결의안이었다. 1882년 제정되어 1943년 폐지된 이 법은 미 연방정부가 특정민족을 겨냥해 ‘출신국’을 근거로 이민을 공개 거부한 최초의 법이었다.
지난 27일 새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발동시킨 이른바 ‘무슬림 금지’ 이민행정명령이 어두운 역사의 한 챕터인 중국인 배제법을 섬뜩하게 상기시킨다고 콜럼비아대학의 역사학자 메이 가이는 지적한다. 지난 주말 공항에서 발 묶인 무슬림 입국자들처럼 중국계 이민들은 가족과 생이별 당한 채, 청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이민의 관문이었던 ‘천사의 섬’에 며칠, 몇 주, 몇 달간 억류되었던 한(恨)을 구치소 나무 벽에 한자 한자 새겨놓았다 - “미국의 파워는 강하다, 그러나 정의는 없다” “감옥에서 우리는 죄인처럼 희생되고 있다”…
당시 연방대법원이 이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중국인 배제법을 합헌으로 판결한 근거가 바로 ‘국가안보’였다. “중국인은 인종적으로 동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의 평화와 안보에 위험하다”는 추정에 법원도 동의한 것이라고 가이교수는 설명한다.
‘안보’는 1939년 나치독일을 피해 온 유대인 난민선의 입항불허 때도, 2차대전 일본계 미국인 집단 강제수용 때도, 여론의 적극 지지와 법원의 합헌 판결을 얻어 낸 마법의 한 마디였다.
‘테러 위험지역’으로 규정한 무슬림 7개국 국적자의 입국을 90일 간 금지시키고 난민수용을 120일 동안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트럼프가 내세운 이유도 ‘안보’다. 반미국적,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들끓어도 여론의 과반수가 지지한다.
“난민과 무슬림 7개국에 대한 미 입국금지령은 미국을 안전하게 하는가?” - 대답은 단호하게 “노우”라고 블룸버그 뉴스는 장담한다. 상당수 안보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이다.
그동안 미국을 공격했던 테러리스트들은 이들 7개국 출신이 아니다. 난민에 의한 미국내 테러로 미국인이 살해될 확률은 36억분의1, 사실상 제로다. 보수적인 카토연구소의 통계다. 트럼프는 ‘극단적 검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미 입국자 중 난민만큼 철저하게 검증받는 그룹은 거의 없다. 난민과 7개국 입국금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허약하다는 의미다.
오히려 이번 행정명령이 미국의 대테러전선을 약화시켜,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국내외의 안보관계자들은 우려한다. 테러집단에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선전용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테러의 전쟁터에서 어느 현지인이 미군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통역을 맡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의 통역을 맡았던 이라크인이 지난 주말 미 공항에서 입국을 금지당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대통령은 이민정책에 상당한 재량권을 가졌다. 그러나 백지수표를 받은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반이민’ 폭주엔 제동이 걸어야 할 1차적 책임은 연방의회에 있다. 반대목청을 높이긴 하지만 소수당인 민주당에겐 역부족이다. 트럼프 내각 지명자의 인준을 지연시킬 힘조차 없다. 상하양원의 주도권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존 매케인과 린지 그레이엄만 “테러전쟁에서 자해가 될 것”으로 경고하며 비판성명을 냈을 뿐 나머지는 조용~하다.
대선 캠페인 때 트럼프의 무슬림 금지제안을 정면 비판했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트럼프 명령을 두둔하고 나서자 진보의 기수인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의원이 공개적으로 물었다 : “폴 라이언,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반이민 명령을) 막을 수 있는 파워를 가진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현재 믿는 것은 그나마 법원이다. 단체와 개인, 지방정부의 소송이 확산되고 있지만 트럼프 명령의 합헌성에 대한 법적해석은 상반된다. 종교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1조와 출신국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한 50년 전 개정 이민법에 위배된다는 주장과 “미국의 이익을 해칠 경우 특정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시킬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은 광범위하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민의 나라 미국의 가치관과 전통을 훼손시키고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키는 부당한 정책에 거세게 항의하는 민의의 힘에도 기대볼만 하다. 수천명이 공항에 모여들어 발 묶인 이민자들을 지지하며 시위했고, 달려온 변호사들이 그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해고의 위험을 무릅쓴 공직자들이 “미국과 헌법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보이스를 높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표적 진보단체 미시민자유연맹과 보수의 최대 ‘큰손’ 코크형제도 “이것은 우리, 미국이 아니다”라며 트럼프의 반이민 명령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양극의 이들이 의견을 같이 하는 ‘미션 임파서블’ - 트럼프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거센 항의의 함성과 세계의 비판에 몰려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집행은 순조롭지 않겠지만 금지령 철회를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트럼프는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과거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역사의 교훈은 그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인 배제법을 시행하고 130년이 지난 후 하원은 ‘추하고 반미국적인’ 정책을 사과하며 “이 결의문이 과거행위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시켜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몇 십 년이 지난 후 오늘의 반미국적, 비인도적 이민정책을 침묵으로 공모한 연방의회는 다시 어떤 결의문으로 사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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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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