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하기 무섭게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8년간의 국내정책을 뒤집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은 그보다 훨씬 과격한 변화에 직면했다. 말과 행동을 통해 트럼프는 룰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의 중심이 미국의 정위치라는 아이디어에서 이탈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70여년간 지속되어온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에세이에서 제시카 매튜스는 1945년 이래 미국인들은 지지 정당에 관계없이 세 가지 원칙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세계 전역에 걸친 광범위하고 깊숙한 국제적 동맹관계가 미국의 안보를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개방적인 글로벌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미국의 번영과 다른 국가들의 성장을 허용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독재를 “용인하고 관리하거나 대적”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은 결국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장점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매튜스는 지금까지 30년간 도널드트럼프는 이들 3개 원칙을 전 세계로 하여금 미국에 바가지를 씌우도록 만든 순진무구한 견해였다며 집요하게 공격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정책 전환의 규모를 고려해 볼 때 당초 미국이 도대체 왜외부지향형 접근법을 채택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니젤 해밀턴은 그의 탁월한 저서인 ‘군 통수권자’ (Commander in Chief)에서 외향형 외교정책이 프랭클린 루즈벨트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승리의 전망이 아직 요원하던 1943년, 루즈벨트는 전후 국제질서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시 핵심 동맹국들은 FDR의 전후질서 구상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련의 독재자 조셉 스탈린은 루즈벨트의 아이디어에 대체로 저항했고 영국의 처칠 수상은 광대한 대영제국의 지속적 유지를 고집했다.
루즈벨트는 자유의 만개를 가져올 장기적 평화를 정착시키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는 독일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말살되어야 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에 자치를 부여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루즈벨트는 궁극적으로 혁명과 전쟁으로 연결될 조건을 조성하는 식민지 착취 시스템을 혐오했다.
그는 1930년대의 파괴적인 보호주의보다 자유무역을 원했다. FDR은 이 모든 것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국제사회에 영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밀턴은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전쟁을 치르며 군사정책을 지휘하는 와중에서 루즈벨트가 어떻게 전후계획에 시선을 고정시켰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의회와 대중이 여전히 미국의 개입에 의구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루즈벨트는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와 달리 미국이 세계 평화유지에 확실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숫한 계획과 구상에 몰두했다.
그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처칠과 스탈린의 지지가 필요했다. 루즈벨트는 처질과 스탈린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세계를 돌며 그들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신체 일부가 마비된 데다 심장마비 전력 탓에 1932년이후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 루즈벨트는 1943년 카사블랑카로 고통스런 여행을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워싱턴을 출발한 그는 마이애미를 거쳐 10시간의 비행 끝에 트리니다드에 도착했고 거기서 브라질까지 9시간, 브라질에서 카사블랑카까지 또다시 9시간을 비행했다. 장기적 평화로 이어질 전후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소련과 소련의 전후행동으로 말미암아 루즈벨트가 꿈꾸던 글로벌 시스템은 그가 원하는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연합에서 자유무역 시스템과 유럽제국들의 탈식민지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전은 상당부분 실현됐고 미국의 비전에 저항하던 최대 세력이었던 소련은 1991년 붕괴했다.
그가 이룩한 결과는 놀라웠다. 많은사학자들은 우리가 유례없는 시대에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1945년 이후의 시기는 주요 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이 없는 것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1945년 이전의 인류사는 거의 대부분 경제적 중상주의와 정치적 충돌 및 거듭된 전쟁으로 얼룩졌다.
1945년 이후 우리는 미국의 냉전사학자 존 루이스 캐디스가 ‘장기 평화’(Long Peace)라 부르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장기간의 평화를 통해 지난 수십년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소득 증가와 생활수준 개선 및 건강증진이 이루어졌다.
전후 세계질서를 고안하기 시작했을 때 루즈벨트는 지배적 견해를 거부하는 반대자(dissenter)였다. 당시 미국의주된 외교정책 기조는 ‘미국 우선 주의’운동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때에도 미국 우선주의를 주도한 이민배척주의자,고립주의자와 반유대주의자들은 ‘외부 지향적 미국’은 잘 속는 멍청이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히틀러와 제 2차 세계대전을 겪고서야 비로소 미국인들은 미국과 같은 대국의 고립주의와 편협한 자기이익 추구가 지구촌 전체의 불안정과 재앙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럼프를 위시한 지금의 미국 우선주의자들이 동일한 교훈을 다시 배울 때까지 과연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궁금하다.
comments@fareedzakar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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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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