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은 음력 설날이다. 한국에서는 2003년부터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월1일부터 음력 1월3일까지)로 하고 있다. 지난 1월1일에 새해에 할 일을 계획했다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 28일이 음력 1월1일이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보통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 가정이 많지만 미국에서는 휴일이 아니다보니 새벽에 차례를 지내고 일하러 가거나 평일과 마찬가지인 일상을 보낸다. 그래도 한인 떡집과 잔칫집은 경기 저조로 인해 예년과는 달리 주문이 늦어지고 규모가 줄어들긴 했으나 요즘 단체와 일반가정의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보니 설날을 맞아 한국 수퍼마켓마다 동글동글 썰어진 떡국용 떡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흰떡으로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새해가 왔지만 별로 새로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복잡해 그 여파가 가정에까지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26일 오후부터 귀성인파가 서울역과 터미널, 공항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으나 선물꾸러미 부피가 작아졌다고 한다. 장기불황, 정국 혼란과 ‘김영란법’ 여파로 인해 선물을 사긴 하나 생활용품 중심이거나 소액 선물세트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시대별로 인기있는 명절선물 품목을 들여다보면 당시 생활상이 보여 재미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1960년대 선물은 비누, 설탕, 조미료, 통조림 등 생필품과 가공식품이었고 1970년대에는 생필품에서 커피세트 같은 기호품으로 옮겨졌으며 1980년대에는 넥타이, 스카프 등 잡화, 정육과 고급과일, 통조림 등이 인기였다.
1990년대에는 곶감, 버섯, 홍삼 등 건강식품 선물세트, 1990년대 후반에는 와인선물세트, 2000년대에는 올리브유, 2010년대에는 수입조미료, 국내외 디저트 상품이 인기더니 올해에는 다시 1970~80년대의 양말과 커피세트 같은 저렴한 생활용품이 인기라고 한다.
60년대의 한국 가정은 저마다 어려웠고 새하얀 설탕이 워낙 귀하다보니 별다른 간식이 없던 시절, 설탕을 수저로 퍼먹은 적이 있었고 70년에는 다방 문화 확산과 함께 명절 선물로 인스턴트 커피병과 프림병이 나란히 들어있던 커피세트가 기억난다.
80년대는 한국이 막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로 피에르 가르댕을 비롯 한국과 제휴한 해외명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니 선물도 자연히 급이 올라갔고 캔탈롭, 허니듀 등 서양과일이 백화점 매장 과일바구니에 등장했다. 90년대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관련식품과 도구들이 줄지어 나왔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이 잘 산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전세계에서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몰려들다보니 뉴욕에서 가져간 선물이 별로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양말이나 커피세트 같은 저렴한 생활용품이 인기라니 요즘의 세태가 어떤가 알 수 있다.
한국의 유행과 상관없이 지난 연말연시에 식구들에게 양말 선물을 해주었다. 양말은 생활필수품이라 자주 갈아주어야 한다. 발이 산뜻해지면 마음도 산뜻해진다.
뉴욕도 설날을 맞아 고국통신판매 경쟁, 무료고국성금 서비스에 한인업소마다 새해맞이 경품잔치로 고객 마케팅이 한창이다. 건강기능강화식품이나 휴양지 항공티켓, 호텔숙박권을 명절선물로 마련할 정도로 여유 있는 자식이 뉴욕에 얼마나 될까, 또 그런 선물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효도할 부모가 이 세상에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난 젊어서 직장에서 월급도 많이 받았는데 왜 엄마나 아버지 명절 선물을 하려니 늘 돈이 없었을까? 다른 사람은 다 챙겨도 부모에게는 늘 이해부터 구했다. “엄마, 나 지금 돈이 없네, 선물 안해도 되지?” 손을 설레설레 흔들면서 “괜찮다. 괜찮다, 아무 걱정하지마라”하고 미소 짓던 엄마가 생각난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번 설날에는 1월에 돌아가신 엄마의 사진 앞에 살아생전 드리지 못한 명절선물로 꽃 한다발을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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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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