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가 으스대며 책가방에서 책을 한권 꺼내 건넨다. “할머니, 이거 정말 재미있는 책인데 내가 할머니하고 같이 읽고 싶어서 빌려왔어.”
손자가 내미는 책은 아프리아 케냐에서 일어난 동물 이야기다. 2006년, 큰 장마와 함께 쓰나미가 왔다. 그 통에 한 무리의 하마들이 바다에 쓸려갔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바닷가 모래 속에 갇혀버렸다. 한 살 먹은 하마는 2 피트밖에 안되는데도 몇 백 파운드 나가고 그 덩치에 성질도 더러워 구해주려는 사람들을 다가오지도 못하게 해서 애를 먹였다.
마침 그곳은 유명한 휴양지였어서 피서객들도 많았는데 그중에 오웬이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용감하게 온몸으로 덮쳐 드디어 잡을수 있었다. 하마는 오웬이라는 이름을 기념으로 받았다. 어렵사리 잡기는 했는데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마는 서너살까지 에미가 젖을 먹여야 한다니 오웬은 아직 젖을 먹여할 처지였다.
그런데 자기 무리끼리의 결속이 강한 하마는 같은 하마라 해도 다른 무리의 하마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무리일 경우 아예 죽여 버린단다. 동물구조원들은 생각하다 못해 오웬을 130세 먹은 커다란 거북이 있는 곳에 넣었다. 거북이는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혼자 살기 때문에 옆에 누가 있어도 상관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웬은 풀어주자마자 쏜살같이 거북이 옆으로 달려가 거북이 곁에 코를 박고 누었다. 심술쟁이 늙은이라는 별명의 그 거북이는 하마가 다가오면 피하고 또 다가오면 피하고 내내 실랑이를 벌였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놀랍게도 두 놈이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자고 있었다.
그 후로 전혀 다른 종의 두 동물이 사이좋은 짝이 되어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 것도 못먹고 있는 오웬에게 거북이는 밥은 이렇게 먹는거야, 하듯 풀 먹는 시범을 보여주는듯 하고 물에도 데려가 함께 논다. 거북이가 자기 엄마인줄 아는듯 오웬은 사람들이 거북이를 가까이 하기만 하면 땅을 구르고 심술을 부리는데 거북이는 괜찮아, 괜찮아, 하듯 달랜다.
또 원래 하마는 더운 낮에는 쉬고 어둑해지면 움직이는데 오웬은 낮에 깨어있는 거북이 뒤를 따라다니며 밤에 잔다. 서로 챙기는 건 거북이도 마찬가지여서 어쩌다 밥을 빨리 먹은 하마가 먼저 물에 들어가면 거북이는 하마를 쫓아 다시 데리고 나와 자신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서 함께 물에 들어간다.
그 뿐이 아니다. 둘이 서로 말을 주고 받는데 그건 하마 말도 아니고 거북이 말도 아닌, 둘이 창조해낸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언어란다. 시설의 관리자들은 걱정이다. 하마는 하마답게 살아야 하는데 자신이 거북인줄 아는 이 고집쟁이 어린 하마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게다가 점점 더 덩치가 커가는 오웬이 거북이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거북이 등에 상처가 나 곪게되어 수의사가 왔더니 오웬이 땅을 구르고 씩씩거려 할 수 없이 거북이를 따로 격리 시키기도 했다. 거북이가 안보이자 애기 하마는 거북이를 찾아 정신없이 헤멘다. 엄마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어미가 필요했던 하마는 그렇다치더라도 130년이나 고요히 혼자 살던 거북이는 어떻게 그런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전혀 다른 종에다 인간의 눈으로 치자면 세대 차이도 만만치 않은데. 책을 읽어주며 손자는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어, 하면서 킬킬대고 웃고 난리다. 애기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은 일생을 홀로 살던 늙은 거북이마저 살뜰한 어미의 맘으로 변화 시킨다. 살면서 사회적 성역으로 치부되는 엄마 라는 지위 때문에 차마 입밖에 내놓을 수 없어 자신의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음 깊히 묻어놓고 사는 이들을 적잖게 봤다.
그런데 사랑이며 배려, 보살핌 같은 정서가 자신의 DNA에는 쓰여있지도 않은 늙은 거북이가 사랑이 다가오자 사랑을 산다. 사람은 사랑땜에 산다는데, 그리고 우린 만물의 영장이라는데, 왜 우린 사랑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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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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