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주 서남부에 ‘배델’이라는 마을이 있다. 1 평방마일이 채 안 되는 면적에 인구가 고작 614명이다. 만약 워싱턴 주에 ‘배달’이라는 도시가 생기고 주민이 모두 배달민족 후손으로 채워진다면 ‘배달’은 시애틀, 스포캔, 타코마에 이어 워싱턴 주의 4번째 대도시가 된다. 빈 말이 아니다. 사이러스 하빕 부지사가 지난 13일 ‘한인의 날’ 행사에서 그렇게 갈파했다.
한인의 날 축제는 매년 1월13일에 열린다. 1903년 한국인 노동자 10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한 날이다. 완전 숫자인 100보다 1이 더 많은 101은 넘쳐흐를 만큼 충분함을 뜻한다. 지난 114년 간 미국의 배달민족은 200여만 명(한국정부 집계)으로 20만 배나 늘어났고, 워싱턴 주에만 15만여명이 살아 제4의 도시를 이루고도 넘쳐흐를 정도가 됐다.
지구촌 시대인 요즘엔 이민의 개념이 마치 돈 싸들고 환경이 더 좋은 나라로 이사 가는 것 마냥 변색됐지만 원래 한국인들의 이민은 거의 유일한 생존방법이었다. 일제가 한반도 및 동아시아를 본격 공략한 조선 말기부터 수탈과 절대빈곤에 시달린 수많은 동포가 문전옥답을 빼앗기고 중국의 북간도와 러시아의 연해주 등 박토로 자의반, 타의반 밀려나갔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101명에 이어 1,033명의 노동자 및 가족이 멕시코의 에네켄(용설란의 일종) 농장에 2년 후인 1905년 4월4일 도착, 중남미 한민족 이민의 효시가 됐다. 밧줄 제조의 원료인 에네켄 수확작업은 사탕수수보다 훨씬 힘들고 보수도 형편없이 적었다. 이들 중 일부가 쿠바로 건너가 모진 고난을 겪으며 현존하는 1,000여 동포의 조상이 됐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엔 총 1,000여명의 소위 ‘사진 신부’ 색시들이 살길을 찾아 하와이와 본토로 시집왔다. 유학생, 상인, 정치난민 등 600여명도 이 기간에 들어왔다.
특히 한국전쟁 종전 후 10여년 간 전쟁고아 6,300여명, 국제결혼 한국여성 6,500여명 및 유학생, 연구원, 의사 등 6,000여명이 미국에 들어왔다고 유의영 박사(칼스테이트 LA 명예교수)는 밝혔다.
실패작이긴 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각국의 농지개간 이민도 역시 한국이 가난했던 1960년대 초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서독 탄광에 8,000여명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했고, 1970년대엔 간호사 1만여명이 독일 병원에 취업했다. 이들 광부와 간호사들 중 약 절반이 계약만료 후 독일에 정착했고, 나머지 상당수도 미국과 캐나다로 재 이민했다.
미국 이민법이 1965년 대폭 완화돼 가족이민 문호가 열리면서 한국 이민자들도 몰려왔다. 밀입국자도 꼬리를 이었다. 하지만 1987년 3만8,000여명으로 피크를 이룬 한국 이민자들이 모국이 잘 살게 되면서 크게 줄었다. 1998년 IMF 금융위기 때 반짝 늘어났다가 그 후 다시 감소추세다. 일부 졸부들은 재미동포를 ‘재미똥포’나 ‘미국거지’로 폄훼하기 일쑤다.
그렇게 잘 사는 한국의 분위기가 지금 심상치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성인남녀 10명 중 7명이 해외이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히 20대 비율이 73.7%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72.4%로 두 번 째였다. 이유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떠나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가 51.2%로 가장 많았다. 이민 희망국은 캐나다(22.1%), 호주(14.4%), 미국(11.3%) 순이었다.
‘헬 조선’이라는 요상한 신조어도 크게 유행한다. 특히 20~30대 젊은 층 사이에 회자되는 이 단어는 ‘헬’(hell: 지옥)과 ‘조선’의 합성어다. ‘지옥 같은 조선’이라는 뜻인데 그 조선은 김정은의 조선 인민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다. ‘망한민국’ ‘개한민국’ 등 파생어도 있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며 탈북자들처럼 ‘탈 헬 조선’을 꿈꾼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한국 젊은이들이 부모의 권력과 재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똥수저로 분류된다는 자조도 있다. 단순 불만이 아니라 국가나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감 수준이다. 그래서 걸핏하면 광장이 촛불바다가 된다.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해외 이민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워싱턴주에 두번째 ‘배달’ 시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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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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